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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회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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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예수 그리스도/THELIFE AND MINISTRY OF JESUS 예수의 생애와 사역

 

Jesus Christ예수 그리스도

 

Jesus of Galilee, Jesus of Nazareth라고도 하며, BC 6경 유대아에서 나서 AD 30경 십자가에 처형되었으며, 20세기 세계 인구의 1/3 이상이 믿는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창시자이다. 그의 행적과 메시지들은 [신약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에 대한 초기 교회의 신앙에는 신학적 동기와 전제가 들어 있기 때문에 예수의 진정한 생애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THE LIFE AND MINISTRY OF JESUS

예수의 생애와 사역

The birth and family.

탄생과 가족

The birth of Jesus.
예수의 탄생
The course of Jesus' life and the geographic setting of his ministry can only be given in rough outline. The details are surrounded by many uncertainties. The period within which his ministry and death occurred may, however, be narrowed down with considerable accuracy on the basis of a synchronistic dating of the appearance of John the Baptist in the 15th year of Tiberius (Luke 3:1)--i.e., AD 28/29--which is confirmed by nonbiblical sources. But the year and place of Jesus' birth are uncertain. Mark and John say nothing about them. The only sources for them are the widely divergent birth and childhood legends in Matthew 1 and 2, where Jesus' birth and early lot are set in the time of Herod I and the change of regime (4 BC), and the narrative of Luke 2, which links Jesus' birth with the first registration in Judaea under the emperor Augustus (AD 6). There is also historical evidence of a census carried out about 8 BC. With all of this in mind, many sources estimate the year of birth as 7-6 BC. (The use of BC [before Christ] and AD [Anno Domini, or "in the year of the Lord"] was not common until the Middle Ages.) (see also Index: infancy narrative) 예수의 생애와 그가 활동한 지리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단지 윤곽만 파악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들은 많은 의혹들로 싸여 있다. 그러나 그의 사역과 죽음의 기간은 티베리우스 15년(누가 3 : 1), 즉 AD 28~29년 세례 요한이 등장하는 것을 근거로 상당히 정확하게 활동시기를 추정할 수 있으며, 비성서적 자료들도 이것을 확인해 준다. 그러나 예수 탄생 시기와 장소는 불확실하다. 마가 복음과 요한 복음은 이에 대하여 말해 주지 않는다. [마태의 복음서] 1·2장에서는 예수의 탄생과 초기시절이 헤로데 1세 때와 정권의 교체기(BC 4)였고, [누가의 복음서] 2장에서는 예수의 탄생을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AD 6) 있었던 유대의 첫번째 인구조사와 연결시킨다. 또한 BC 8년경에 행해진 인구조사에 대한 역사적 증거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많은 자료는 탄생 연도를 BC 7~6년으로 추정한다(BC와 AD의 사용은 중세까지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음). 
The tradition of Bethlehem as the place of Jesus' birth has its source in all probability in the Old Testament conception of the Messiah as a descendant of David. Early Christianity took this view from the beginning. "Son of David" is found in many texts (e.g., Mark 10:48) alongside other titles of Jesus. Its original political and national sense was abandoned, even though it is still recognizable in the acclamation of the people (Mark 11:10). The theological motif of Jesus' Davidic descent, however, did not necessarily involve the idea that he was born in Bethlehem, David's hometown. That is the case only in Matthew 2 and Luke 2. The accounts differ in that, in Matthew, Bethlehem is thought of as the parents' original place of residence, which they soon change to Nazareth because of the dangers threatening their child (e.g., the flight to Egypt), whereas in the Lucan story Jesus' parents really live in Nazareth but stay in Bethlehem temporarily because they are obliged to register at the Davidic family's place of origin. Both traditions are to be judged as legendary variations of the theological theme of Jesus' messiahship, even though each in its own way assigns to his birth a place in history. The extent to which these texts are marked by theological motifs, above all by the thought that Jesus as Messiah fulfills the promises of the Old Testament and the hope of Israel and the world, is shown by the numerous quotations woven into the stories.  예수의 탄생 장소가 베들레헴이라는 전승은 다윗의 후손으로서의 메시아에 대한 [구약성서] 개념에 근거한 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처음부터 이런 시각을 취했다. "다윗의 아들"은 예수의 다른 명칭들과 함께 많은 원전들(예: 마가 10:48)에서 발견된다. 비록 아직도 사람들(마가 11:10)의 환호속에서 인정되고 있지만, 명칭의 원래적인 정치적 민족적 개념은 없어졌다.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신학적 주제는 그가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생각을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직 마태복음 2장 및 누가복음 2장에 한할 뿐이다. [마태의 복음서] 2장에서 베들레헴은 부모가 본래 살던 곳이었으며 그들은 자녀들을 위협하는 위험 때문에 이집트를 갔다가 나자렛으로 옮긴다. 그에 반해 [누가의 복음서] 2장에서는 예수의 부모가 실제로 나자렛에 살았으나 예수를 다윗 가족 출생지의 호적에 올리기 위해 잠시 베들레헴에 머문 것으로 나타난다. 두 전승이 각각 고유한 방식대로 그가 탄생한 장소를 역사상에서 지정할지라도 예수의 메시아성이라는 신학적 주제의 전설적 변형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런 원문들이 신학적인 주제를 띠게 되는 범위는, 무엇보다도 메시야로서의 예수가 구약성서의 약속들과 이스라엘과 세상의 희망을 성취한다는 사상에 의해서, 이야기들 안에 엮여지는 수많은 인용들로서 증명된다.
The widely differing genealogies in Matthew 1 and Luke 3 also belong in the context of the doctrine of the Davidic descent of the Messiah (Christ). They are the only New Testament evidences for genealogical reflection about Jesus' messiahship. The two texts, however, cannot be harmonized. They show that originally a unified tradition about Jesus' ancestors did not exist and that attempts to portray his messiahship genealogically were first undertaken in Jewish Christian circles with use of the Septuagint (Greek translation) text of the Old Testament. Both texts have to be eliminated as historical sources. They are nevertheless important for the development of Christology (doctrines on the nature of Christ), because they reveal the difficulty of reconciling the genealogical proof of Jesus' Davidic descent with the relatively late idea of his virgin birth.  [마태의 복음서] 1장과 [누가의 복음서] 3장의 상당히 다른 계보들에서 메시아(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교리를 내포한다. 그것은 예수의 메시아성에 대한 계보적 사고를 위한 유일한 [신약성서]의 증거이다. 그러나 두 본문은 조화될 수 없다. 그들은 본래 예수의 선조들에 대한 일치된 전승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의 메시아성을 계보적으로 기술하려는 시도들이 [구약성서]의 70인역(그리스어 번역)을 사용하여 유대 그리스도인 집단에서 처음으로 행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본문들은 역사적인 자료들로서는 무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그리스도론(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교리)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 왜냐하면 동정녀 탄생이라는 후기의 사상과,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계보적 증명을 조화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This last tradition, too, is recorded in only two stories--in Luke 1 and Matthew 1--and was originally quite unconnected with the frequently found motif of Jesus' divine Sonship. Paul, John, and the rest of the New Testament writers are not acquainted with the idea. Also, it has left no traces in the rest of the Synoptic tradition, not even in the story of Jesus' birth (Luke 2:1-10), where Joseph and Mary appear as his natural parents. In Matthew 1 Jesus' miraculous birth is presupposed, and in Luke 1 it is explained more closely. This tradition is not to be traced back directly to the idea, widely held in classical antiquity, of heroes and great men who derived from the union of a deity with a human woman. In other words, Jesus is not characterized as a demigod here. What underlies this tradition is, rather, the concept of the creative power of God and his Spirit, which is known from Hellenistic Judaism. This theological, not biological, motif has been applied to Jesus and, with the greatest probability, only secondarily combined with the Greek version of the messianic promise of Isa. 7:14 (in the Septuagint the Hebrew word 'alma--i.e., "young woman"--is translated as "virgin"), and in this way the Christian story came about. According to a very old, reliable tradition, the village of Nazareth--which lay in the Galilean hill country, had a Jewish population, and was untouched by the influence of the Hellenistic cities--was the hometown, and then certainly also the birthplace, of the "Nazarene" (Mark 1:24; 10:47; 14:67; 16:6).  동정녀 탄생 전승도 역시 오직 두 자료(마태 1, 누가 1)에만 기록되었으며, 본래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주제와 연관된 것도 아니었다. 바울, 요한 및 나머지 [신약성서] 저자들은 이 생각에 친숙하지 않다. 또한, 이런 생각은 공관 복음서의 나머지 전승들에서도 흔적을 찿을 수 없으며, 요셉과 마리아가 그의 자연적인 부모로 나타나는 심지어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마태의 복음서] 1장에서 예수의 기적적 탄생이 언급되고 [누가의 복음서] 1장에서는 더 자세히 설명된다.  이 전승은 신과 인간 여자와의 결합으로서 탄생하는 영웅들이나 위대한 사람에 관한 고대의 이야기에서 널리 믿어지던 사상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는 여기서 반신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이 전승에 깔려 있는 것은 , 차라리, 하느님과 성령의 창조적 능력이며, 이것은 헬레니즘 시대의 유대교로부터 알려진 것이다. 이러한, 생물학적이 아니라, 신학적 동기가, 예수에게 적용되었고, 명백하게도, 이제 이차적으로 [이사야] 7장 14절(70인역에서 히브리 단어 alma, 즉 '젊은 여인'이 '처녀'로 번역됨)의 메시아 약속에 대한 그리스어 번역과 연합되었으며, 이렇게 하여 기독교의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매우 오래된 믿을 만한 전승에 따르면, 나자렛 마을은, 언덕이 많은 갈릴리의 시골에 있으며, 유대인이 많은 곳이며 그리스의 도시들의 영향을 입지 않은 곳으로, 예수의 고향이었으며, 그리하여 명백하게 "나사렛 사람"의 출생지였다.(마가 1 : 24, 10 : 47, 14 : 67, 16 : 6).
The family of Jesus.
예수의 가족

Four of Jesus' brothers and several sisters are mentioned in Mark 6 (though their identification as full-blooded siblings, half brothers and half sisters, or cousins has been long debated). All his relatives' names testify to the purely Jewish character of the family: his mother's name was Mary (Miriam), his father's Joseph, and his "brothers' " James (Jacob), Joseph, Judas, and Simon (names of Old Testament patriarchs). The same is true of the name Jesus. In the Septuagint it is the customary Greek form for the common Hebrew name Joshua--i.e., "Yahweh helps." It is also mentioned in Mark 6 that Jesus or his father (there are variant textual versions) was a carpenter. There are several not unimportant pieces of information preserved about the later history of the family. Of his father, who probably died early, little is mentioned. His mother, brothers, and sisters did not join his movement at first but, rather, disapproved of his behaviour (Mark 3:31-35). Mary is, however, mentioned as a member of the Christian Church after his death (Acts 1:14). The same is true of his brother James, whom Paul names among the witnesses of the Resurrection (I Cor. 15:7) and who was the leader of the Jerusalem Church after Peter (Galatians, Acts). The author of the Letter of James has taken a brother's name for himself, as did the author of the Letter of Jude in respect to another brother. According to a later nonbiblical account (in the Ecclesiastical History of Eusebius, a 4th-century historian of the church), grandchildren of Jude (who otherwise remains unknown), who were living in Galilee, were summoned by the emperor Domitian as "descendants of David," but then released as representing no political danger. (see also Index: "Ecclesiastical History," ) 

예수의 가족으로는 형제 4명과 몇 명의 누이가 [마가의 복음서] 6장에서 언급된다(본문에는 교리적 동기를 드러내기 위해 그들을 이복형제나 사촌들로 만들 근거가 없음). 가족의 이름은 어머니 마리아(미리암), 아버지 요셉과 형제들은 야고보(야곱)·요셉·유다·시몬(구약 족장의 이름들)이다. 예수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70인 역 성서에서 예수의 이름은 히브리 이름인 요수아, 즉 '여호와가 도우신다'의 그리스어 형태이다. [마가의 복음서] 6장에서 예수 혹은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다고 언급한다. 가족의 이후 역사에 대한 몇 개의 단편적인 정보가 있는데, 아마 일찍 죽은 것 같은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 누이들은 처음에는 그의 운동에 참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행동을 비난했다(마가 3 : 31~35). 그러나 마리아는 그의 죽음 이후에 그리스도교 교회의 일원으로 언급된다(사도 1 : 14). 그의 형제 야고보는 베드로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다. [유다의 편지]의 저자가 다른 형제의 이름을 존경하여 이름을 취했던 것처럼, [야고보의 편지] 저자도 야고보의 이름을 취했다. 4세기 교회사가인 에우세비오스의 [교회사 Ecclesiastical History]에 따르면, 갈릴리에 살고 있었던 유다의 손자들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다윗의 자손들'이라는 이유로 소환되었으나 정치적인 위험이 없으므로 석방되었다.

Jesus most likely grew up in the piety that was cultivated in the home and in the synagogue (including Bible study, obedience to the Law, prayer, and expectation of the final coming of the Messiah) and also took part in pilgrimages to Jerusalem. From these scattered reports it is possible to gain some information about Jesus' background and theological education. The latter also comes to light in his teaching and in the frequently attested honorific form of address "rabbi" (teacher), which, in the language of the time, was not yet confined to members of the trained and ordained profession of the scribes. Nothing is precisely known, however, about Jesus' youth and inner development. What is known is contained in the sole narrative in Luke 2:40-52 (the boy Jesus in the Temple) and the legendary apocryphal gospels, which, after the manner of legend, sought to illumine the obscurity of Jesus' childhood.  예수는 대체적으로 , 성서 공부, 율법에 대한 순종, 기도, 메시아의 마지막 도래에 대한 기대 등을 포함하여, 가정과 회당에서 양육되었으며 예루살렘의 순례에 참가하는 등의 경건한 분위기에서 성장한 듯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보고들에 의하면 예수의 배경과 신학적 교육에 대한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후자는 그의 가르침과 '랍비'(선생)라는 명예로운 이름에서 밝혀지는데, 그 시대에 랍비라는 칭호는 훈련되어 임명된 율법학자라는 직업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예수의 초기생활과 내적 발전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것이 없다. 알려진 것은 [누가의 복음서] 2장 40~52절(성전에서의 소년 예수)에 유일한 설화가 간직되어 있고, 위경들이 전설의 형식으로 예수의 어린시절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The ministry.

사역

The role of John the Baptist.
세례 요한의 역할
The Gospel accounts of the appearance and activity of John the Baptist and of Jesus' Baptism at his hands first establish a historically safe basis for knowledge of Jesus' life and work. Significantly, the oldest Gospel writer calls these events "the beginning of the gospel of Jesus Christ" (Mark 1:1), indicating that his would be a message about Christ, not a description of the contemporary background for Jesus' life. The Baptist is, therefore, represented exclusively from the Christian point of view. His place in the Christian history of salvation is that of a forerunner or pioneer; or he is a witness to Jesus, as i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But the tradition has nevertheless preserved unchallengeable information about John, especially in Q. Josephus characterizes him as a mere moral teacher and his Baptism as merely ritual washing. In reality, however, he made his appearance in the desert as a prophet of the imminent Last Judgment, calling all without exception to repentance in the eleventh hour, and baptized those who were ready to repent, in order to prepare them for the baptism of fire of the mightier one coming from heaven and to preserve them from his annihilating wrath (Matt. 3:7ff. and Luke 3:7ff.). His dress and diet as an ascetic nomad and, above all, the location of his ministry (the Judaean desert and the Jordan steppes), far away from the institutions and places of traditional religion and secularity, illustrate the earnestness of his eschatological preaching and his attack on all conventional piety; but they also correspond to the old prophetic promise that God would encounter his people in the Last Days, as he did once before, in the desert. Historically, all these features may not be understood immediately in Christian perspective; i.e., as pointing to Jesus as the Messiah. The tradition of the Gospels visibly and increasingly interpreted the history of the Baptist in retrospect, and not least for the reason that there still existed for a considerable time alongside the disciples of Jesus a rival body of disciples of the Baptist.  세례 요한의 등장과 행동, 그에게 예수가 세례받았다는 복음서의 내용은 예수의 생애와 사역을 알 수 있는 최초의 역사적 근거이다. 특히, 가장 오래된 복음서 저자는 이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가 1 : 1)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예수의 생애에 대한 동시대적 배경의 서술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지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묘사된다. 그리스도교 구원 역사에서 그의 위치는 선구자 혹은 개척자이거나 [요한의 복음서]에서처럼 예수의 증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승은 요한에 대한 확실한, 특별히 Q에 있어서, 정보를 보존하고 있다.  요세푸스는 그를 단순히 도덕 교사로, 그의 세례를 단순한 의식적 씻음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예외없이 모든 사람을 회개하라고 하면서 임박한 마지막 심판의 예언자로 광야에 등장했고, 소멸시키는 진노(마태 3 : 7~, 누가 3 : 7~)로부터 그들을 지키기 위해, 하늘로부터 오는 더 전능하신 분의 불세례를 받을 준비를 하도록 회개하려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금욕적 유목민 같은 옷, 음식, 제도, 전통적 종교장소, 세속주의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의 활동장소(유대 광야와 요르단 스텝 지역)는 종말론적 설교의 열정과 인습적 경건에 대한 그의 공격을 예시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이 마지막 날에 광야에서 그의 백성을 만난다는 오래된 예언자의 약속과 일치한다. 역사적으로 이 모든 모습은 메시아로서 예수에 초점을 맞추는 그리스도교인의 시각에서는 즉각 이해될 수는 없을 것이다. 복음서들의 전승은 세례 요한의 역사를 소급하여 해석했으며, 이런 해석은 예수의 제자들 옆에 이에 필적하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의 무리들이 아직도 존재한다고 해서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That Jesus was baptized by John, as all the Gospels record, indicates that in all probability Jesus initially belonged to John's movement. The account of Jesus' Baptism is styled in the Gospels as an "epiphany (or manifestation) story" and deals with Jesus' installation at this time as Messiah (Mark 1:9-11). The announcement of the Kingdom of God by John and his call to repentance retained decisive significance for Jesus. His high estimate of the Baptist emerges unambiguously from the fact that he placed John above the prophets and called him the greatest among men (Matt. 11:7-11). He saw the signs of the approaching Kingdom of God in the work of the Baptist as in his own work, and he recognized the authority given John as being from heaven (Mark 11:27-33). These words carry all the more weight historically, because the tendency of the context here is to proclaim Jesus as the Messiah and to place the Baptist, as the lesser, in Jesus' service. It is significant that John himself is nowhere attacked in the Synoptic texts, nor is he designated as a follower of Jesus. Wherever polemic can be recognized in the Gospels (especially in John), it is always directed against the false belief, doubtlessly held by the (later) Baptist disciples, that John was the promised Messiah. The extent to which the close connection between Jesus and John occupied the theological reflection, apologetics, and imagination of the Christian Church is shown by several passages and, above all, by the cycle of legends in the introduction to Luke (chapter 1). Regardless of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Jesus and John the Baptist, especially in their prophetic announcement of the approaching Kingdom of God and their call to repentance (cf. Matt. 3:2; 4:17), there are also radical differences.  예수가 요한에 의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예수가 처음에는 요한의 운동에 속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예수가 세례받은 내용은 복음서에서 '에피파니(현현) 이야기'로 유형화되었고, 이것을 예수가 메시아로 임명되는 것으로 다룬다(마가 1 : 9~11). 요한에 의한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회개에로의 부름은 예수에게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그는 요한을 예언자들 위에 놓았으며 그를 사람들 중에 가장 위대한 자라고 불렀다(마태 11 : 7~ 11). 그는 자신의 사역에서처럼 세례 요한의 사역에서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징조를 보았고, 요한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인식했다(마가 11 : 27~33). 이 말들은 역사적으로 한층 더한 무게를 지닌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문맥의 경향은 예수를 메시아로 선언하며 세례 요한을 예수를 섬기는 더 낮은 자로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요한 자신은 공관 복음서들의 어느 곳에서도 공격당하지 않으며, 예수의 추종자라고 지칭되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복음서에서 반론이 있을 만한 곳(특히 요한 복음에서)에는 언제나, 의심할 여지 없이 후대의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 의해서 제기될 수 있는, 요한이 약속된 메시야라는 거짓된 믿음을 향해서 집중되었다.  예수와 요한의 밀접한 관계가 차지한 신학적인 고찰, 변증론 및 기독교 교회의 구상의 정도는, 여러 구절들에서 밝혀지는데, 무엇보다도, 누가복음 1장의 서문에서 전승으로 나타난다.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언자적 선포와 회개에로의 부름(마태 3 : 2, 4 : 17 참조)에서 예수와 세례 요한의 밀접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또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The beginning of the ministry.
사역의 시작
At the latest, after the Baptist's imprisonment (as the Synoptics state), possibly even earlier (according to John), Jesus began as a grown man (Luke 3:23) an independent public ministry, but in the villages of his Galilean homeland and--sporadically--in the neighbouring countryside, rather than in the wilderness, as did John. The real area of his ministry was the district on the northwest bank of the Lake of Gennesaret (or Sea of Galilee; the towns of Beth-saida, Chorazin, and Capernaum). The change of scene is significant in itself. Jesus did not call the people into the desert. He sought men in their settlements and took part in their ordinary life, and not as an ascetic, like John the Baptist (Matt. 11:18). He worked among them as a wandering preacher (Matt. 8:20) and charismatic miracle worker, without, however, baptizing like John. But the image he presents is nonetheless highly peculiar. He taught not only in the synagogues but likewise in the open air, on the shore of the lake, and on the road. There also were strange people in the group surrounding him: women, children, and many who were viewed as godless or unclean. Further, the manner of his teaching is surprising. He did not derive it from the Holy Scriptures, although he was familiar with them, esteemed them, and appealed to them here and there. Instead, he constantly presented the reality of God and the validity of his will in an immediate way and made them comprehensible to his hearers without using the established structure of sacred texts and traditions and without presupposing a conventional, religious point of view. His metaphors, parables, and proverb-like utterances were not used to explain traditional teachings of biblical theology but, instead, appealed directly to the everyday experience and the understanding of his hearers, and they are therefore characterized by a unique self-evidence and a disarming simplicity.  마침내, 세례 요한의 투옥 이후(공관 복음서에서 언급하듯이), 아마도 훨씬 이전에(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성인(누가 3 : 23)으로서, 광야보다는 갈릴리 고향 마을들에서(간헐적으로는 이웃 마을들에서) 독립적인 공적 사역을 시작했다. 그의 사역의 실제 영역은 겐네사렛 호수의 북서연안지역(또는 갈릴리 해, 베새다 마을들,·코라진·및 가버나움)이었다. 장소의 전환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었다. 예수는 백성들을 광야로 부르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을 그들의 거주지에서 찾았고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에 참여했으며, 요한처럼 금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마태 11 : 18). 그는 유랑하는 설교자로서 그들 가운데서 일했고(마태 8 : 20), 카리스마적인 기적을 행했으나 요한처럼 세례를 베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준 이미지는 상당히 특이하다. 그는 회당에서뿐만이 아니라 공개된 장소에서, 호숫가에서, 길에서 가르쳤다. 그를 둘러싼 무리에는 이상한 사람들(여인, 어린이, 불경건하거나 불결한 자로 여겨진 사람들)이 있었다. 더욱이 그의 가르치는 방식은 놀라웠다. 그는 성서를 잘 알고 존중했으며, 여기저기서 그것들에 호소했지만, 그의 가르침은 성서로부터 끌어낸 것이 아니다. 그대신 그는 하느님의 실재와 그의 뜻의 정당성을 직접적인 방식으로 항상 제시했고, 거룩한 본문과 전승들의 기존 구조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인습적이고 종교적인 관점의 전제없이 청중들을 이해시켰다. 그의 은유·비유·잠언은 성서신학의 전통적 가르침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대신 일상 경험과 청중의 이해에 직접 호소했고, 그러므로 그것들은 고유한 분명함과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단순함이 특징이었다. 
This corresponds to the manner of his behaviour in his meetings with other people. The Gospels portray this in a large number of separate scenes. These persons vary considerably: pious and impious, rich and poor, respected and outcast, healthy and ill. In every encounter, Jesus' amazing sovereignty with which--free of all prejudices--he mastered the situation is made visible. He saw through his opponents' attempts to corner him in debate, disarmed their objections, saw the needs of the possessed and the sick who crowded around him, and associated with those who were avoided by others. Some of the scenes may only have been added or filled out in later popular tradition, but they clearly demonstrate the power with which Jesus helped people by word and deed, whether he grew passionately angry over the power of disease or over the pride and lovelessness of the "righteous" or whether he commanded the demons or blessed children and laid hands on the sick.  이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 있어서 그의 행동 방식과 일치한다. 복음서들은 이것을 많은 분리된 장면에서 묘사한다. 이 사람들은 상당히 다양하다: 경건한 자와 경건하지 않은 자, 부자와 가난한 자, 존경받는 자와 버려진 자, 건강한 자와 병든 자. 이 모든 만남에서, 선입견에서 떠나 상황을 지배하는 예수의 놀라운 위엄이 드러난다. 그는 논쟁에서 그를 어렵게 하려는 적대자들의 시도를 누그러뜨렸고, 그 주위에 모여든 귀신들린 자들과 병든 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알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자들과 함께했다. 이들 장면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오직 후대에 잘 알려진 전승에서 더해졌거나 채워졌지만, 그가 질병들의 권세나 "의로운 자들"의 교만과 사랑없음에 대해 참을 수 없이 분노하든지, 아니면 마귀들을 쫓아 내거나, 어린이들을 축복하거나, 아니면 병자에게 손을 얹든, 그것들은 분명히 예수가 말씀이나 행위로서 사람들을 도와 주었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The calling of the disciples.
제자들을 부름
According to the unanimous witness of the Synoptic Gospels, Jesus gave rise to a movement in Galilee and found numerous followers, although not without provoking rejection as well. This movement cannot yet be called a "church." (This concept first appears in the later tradition.) To spread his message and movement, he called on his disciples, for the sake of the approaching Kingdom of God, to resolutely surrender all ties of family and work (Mark 8:34ff.; Matt. 10:37ff.; Luke 14:26ff.) and to follow him and to become "fishers of men" (Mark 1:17; Luke 5:10). Many of his words are of extreme sharpness and do not conceal how difficult the disciples' road will be (Luke 14:25-33). But, at the same time, the patent immediacy of Jesus' sovereign power comes to light in these texts. In the scenes mentioned, it is Jesus who makes the decision. He calls, appoints, and selects particular men, without regard to their origin and previous training. There are fishermen (Andrew, Peter, James, and John), a tax collector (Matthew), and Zealots (Simon and, perhaps, Judas Iscariot) among them, perhaps also a few craftsmen and peasants. Whether it was a circle of 12 disciples from the start is questionable and under debate. It is clear, however, that he commissioned and authorized his disciples to preach and to drive out demons (Mark 3:14). Some of these disciples are well noted in the Synoptic tradition (e.g., Peter and Judas Iscariot). I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others come into the foreground, including some from among the followers of the Baptist. Of others, only their names are known (e.g., Thaddaeus). A characteristic of these companions of Jesus is that their discipleship is not, as with the rabbis, a transitional stage that ends with their "training." None of them moves up after sufficient study to the status of "master" (Matt. 23:8). Even if accounts of the calling of disciples have, in general, been styled in the later tradition as examples of what it means to be a Christian and individual scenes have been added to the original stock of stories, the recollection of incidents that occurred during Jesus' ministry in Galilee is doubtlessly preserved in the texts.  공관복음서들의 일치된 증언에 따르면, 예수는 갈릴리에서 운동을 일으켰고, 물론 비난이 없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추종자들을 얻었다. 이 운동은 아직은 '교회'라고 불려질 수는 없다(이 개념은 후기 전승에서 처음으로 나타남). 그의 말씀과 운동을 확장하기 위해 그는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가족과 생업의 모든 끈을 결연히 포기하고(마태 10 : 37~, 마가 8 : 34~, 누가 14 : 26~), 그를 따라 '사람을 낚는 어부'(마가 1 : 17, 누가 5 : 10)가 되려는 그의 제자들을 불렀다. 그의 말씀들은 극단적으로 날카로우며 제자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숨기지 않는다(누가 14 : 25~33). 그는 출신과 교육수준에 상관없이 부르며 임명하고, 특별한 사람들로 선택한다. 그들 중에는 어부들(안드레아·베드로·야고보·요한)·세리(마태)·열심당원(시몬과 가리옷 유다)·농부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12명이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가 제자들을 임명하고 설교하며 귀신을 내쫓는(마가 3 : 14) 권위를 주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요한의 복음서]에서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몇몇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의 제자훈련은 랍비들처럼 '훈련'과 함께 끝나는 과도적인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 중 누구도 충분한 공부 후에 '스승'(마태 23 : 8)의 지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제자들을 부르는 내용들이 일반적으로 후기의 전승에서 그리스도교도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예로 유형화되었고, 개별적인 장면들이 이야기의 본 줄기에 첨가되었을지라도 갈릴리에서 예수가 사역하는 동안 일어난 사건들의 회상은 분명히 본문들에 보존되어 있다.
The Galilean period.
갈릴리 기간
The loose and often differing order of the individual scenes only entitles scholars to speak of a rather ambiguous Galilean period of Jesus' activity: they cannot say with certainty how long it lasted. Because the Synoptic Gospels mention only one trip of Jesus to Judaea and Jerusalem, with the Passion following it, the impression is created that the period lasted no longer than one year. Editorial and theological considerations have, without question, also played a part in this presentation (e.g., Jesus' activity in Galilee and his sufferings in Jerusalem). Scholars offer several good reasons, however, to support the assumption that the Synoptic outline still deserves to be preferred to the widely differing one in John. In the latter, Jesus is in Jerusalem for three celebrations of the Passover (John 2:13-23; 6:4; 11:55), as well as for one Sukkot (Feast of Tabernacles; John 7:2) and one Hanukka (Feast of Dedication; John 10:22). This involves a period of more than two full years. It is doubtful, however, that John is based on an independent tradition, because the indications of time referred to serve the Evangelist as a means of changing the scene of Jesus' ministry between Jerusalem and Galilee. (The centre here is Jerusalem.) 갈릴리 기간이 얼마 동안이나 지속되었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공관복음서들은 예수가 유대와 예루살렘에 가서 수난을 당한 오직 1차례의 여행만을 언급하기 때문에, 그 기간이 1년을 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갈릴리에서의 예수의 활동과 예루살렘에서의 그의 수난으로 나누는 편집적 측면과 신학적인 의도는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만, 몇 가지 이유들로 학자들은 공관복음서의 구성이 [요한의 복음서]의 구성보다 더 선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한의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3번의 유월절 절기를 지냈으며(요한 2 : 13~23, 6 : 4, 11 : 55), 1번의 수코트(초막절, 요한 7 : 2)와 1번의 하누카(봉헌절, 요한 10 : 22)를 지냈다고 한다. 이것은 만 2년을 넘는 기간이다. 그러나 요한이 독립된 전승에 근거하여 기록했는지는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복음서 저자의 시간 지적은 예루살렘과 갈릴리 사이에서 예수의 사역 장면을 구분하는 수단으로 언급되었기 때문이다(여기서 중심지는 예루살렘임).

 

출저:예수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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