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본에 대한 쓰라린 과거의 아픔과 한이 아직 흉터로 남아 있기에 그들과의 경기나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적 감정이 용 솟는다.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다 아예 교과서에 국경선을 그어 가르치며 한국이 불법 점거한 범법자라고 자녀들에게 새기고 있다.

우리에게 위안부나 징용으로 인한 아물지 않은 아픔과 한을 품고 죽어가는 데 따뜻한 말 한마디 없이 한일협정으로 모든 것이 다 청산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지금에 와서 소녀상이 무엇이며 우리나라 사법부의 판결이 무엇이냐고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고 낙인을 찍어 수출규제로 옥죄려 한다.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처사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다”(1:2)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에게 앗수르는 우리에게 일본보다 더한 적대적인 민족적 감정이 불타고 있기에 요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악독이 찬 앗수르를 멸망시키면 되지 왜 그 죄악을 폭로하여 회개에 이르러 구원까지 얻게 하려는가?

더 앗수르가 미워졌기에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항구로 내려가 배에 몸을 실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큰바람을 바다에 쏟으셨다. 요나가 탄 배는 거의 깨어지게 되었고,

사공들은 두려워 “각각 자기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배를 가볍게 하려고 물건들을 바다에 던졌으나 요나는 배 밑층에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1:5).

하나님은 죽음의 파도를 일으켰으나 요나와 함께한 자들의 생명 줄은 붙잡고 계시는 사랑의 가슴이 와 닿는다.

 

바다 위에 있는 배는 물의 부력으로 떠서 항해하나 물이 가장 경계해야 할 죽음의 적이다.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거나 흉흉해지는 파도를 어거하지 못하면 휩쓸려 죽고 만다.

배의 위기는 사람의 힘과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도 소용이 없었고 더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 재앙 속에서 선장은 요나를 발견하고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1:6)고 명한다.

모든 사람들이 재앙 앞에서 “누구로 말미암은 것인가”라는 원인을 찾고 해법을 찿아야 한다고 뜻을 모으며 제비를 뽑는다.

이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능자께 위탁하는 것으로 요나가 제비에 뽑혔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나 그의 명령을 피하여 도망감을 고백하며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잔잔하여 지리라”(1:12)고 고백했다.

 

무리가 요나의 말을 듣고 그의 몸을 바다에 던진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고 두려워서 힘써 노를 저어 육지로 돌리려 하나 더 형편이 흉흉해 졌다.

이제 온 무리가 할 수 있는 최후의 길은 요나를 파도와 풍랑 속으로 던져 제물을 삼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지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1:14)라며 요나를 던졌다.

그러니 “바다가 뛰노는 것이 그친지라”(1:15). 하나님은 그들의 간구를 들어주셨고 생명을 구원해 주셨다.

온 무리는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1:16).

모든 무리는 요나가 고백한 하나님, “그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생명의 주가 되신다는 최고의 진리를 경험케 하셨다.

나아가 자기들이 불렀던 신들은 거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물속에 던져진 요나는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1:17).

사람으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와 승리를 축원 한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이스라엘과 그의 대적인 앗수르까지 품고 있다. 우리가 미워하는 자에게 하나님도 미워해야 한다는 주님의 사랑을 제한하거나 범위를 확정하는 것은 교만이다.

오히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능력을 달라고 구해야 한다. 이런 자를 주님께서 크게 사용하시고 복을 주신다.

둘째, 진정 우리에게 재앙이란? 인생의 풍랑과 파도, 실패와 죽음에 이르게 하는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등지며 가는 인생의 항해다.

요나는 “이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1:12)고 고백했다. 비록 평안할지라도 주님의 사명과 죄의 길을 걷는 것이 바로 재앙과 위기임을 경계해야 한다.

셋째, 인생의 위기 속에서 기도는 자기를 인식시키는 유일한 수단임을 본다. 사공을 비롯해서 배 안에 있던 모든 자들이 위기가 닥치자 모든 수단과 방편을 동원했으나 결국엔 자기의 신에게 기도하며 생명을 구했다.

그러나 진정 기도해야 할 요나는 잠만 자고 있는 것이 위기 중 위기다. 나아가 기도에 생명으로 역사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넷째, 요나는 변했고 은혜로 살아났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 사방팔방으로 꽉 막힌 죽음의 위기 속에서 “고난으로 말미암아”(2:2) 부르짖었다.

고난은 하나님을 기억케 하고 자기를 부정케 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깊은 샘에서 길어내게 한다.

요나는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 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2:4)는 회개와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다”(2:6)는 확신을 선포했고,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다”(2:8-9)는 결단이다.

진정 요나는 고기 뱃속에서 진실한 예배자(2:9)로 변했다. 진정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주님은 그를 축복하신다.

하나님은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2:10).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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