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얼마 전에 소천하신 양 목사님과 북한산에 오르던 기억이 새로워진다. 늘 앞장서 가면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시던 그 목소리가 우거진 녹음의 잎새를 흔들곤 했다.

녹음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좀 험했지만 흐르는 물소리와 새소리가 반겨주었고 숲속의 그늘과 풀벌레 소리는 생명의 향기였다.

올라가는 다리는 무겁지만 내려오는 다리엔 근육이 생기고 마음도 푸르며 정복감에 노래도 부르며 한 주간의 건강을 보장받는 기분이었다.

유대민족이 살던 팔레스틴은 산이 많은 지역으로 때로는 하나님이 이곳에 임하셔서 그의 거룩하신 신비도 느끼게 한다.

산은 우리로 위를 보게 하고, 높고 푸른 포부도 갖게 하며, 인내를 만들어내는 신비도 머금고 있다. 산의 정상에 올라가면 세상이 내려다보이고 두 손을 들고 기도하게 하는 영력도 솟는다.

우리는 높고 큰 산을 바라보며 큰 소망과 변치 않는 믿음을 갖게 하는 주님의 은총이 배어있는 느낌이다.

시편 121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순례자의 노래라고도 불리 운다.

이스라엘은 순례자들로 3대 명절인 유월절, 오순절과 초막절 같은 절기가 되면 각처에 흩어져 있던 백성들이 가족들과 예루살렘으로 모여든다.

예루살렘은 팔레스틴 지역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이스라엘의 경내에 들어오면 그 꼭대기의 시온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마도 순례자들은 그것을 보며 이제 거의 다다른 것을 깨달아 안심하게 된다.

대부분 남쪽 지역에서부터 여행하여 오는 순례자들이 마지막으로 통과하는 지점이 바로 유대 사막으로 이곳을 지나 예루살렘 도성으로 올라가면서 불렀던 노래로 해석된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참고 견디면서 조금만 참고 걸으면 곧 예루살렘 성에 이른다는 기쁨과 성취로 이 노래로 불렀다.

시편 121편은 크게 두 부분으로 1-2절까지는 한 순례자의 독백,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로 전개되며

3-8절까지는 다른 순례자가 읊었던 노래에 화답 형식으로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121:3-8).

이 시편은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포로의 고달픔과 역경을 새로운 소망으로 바꾸되, 시온의 언덕에 올라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서 찾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이 땅에서 순례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 아버지의 집, 천국을 향하여 가는 자의 위로의 노래로 축복의 보장을 가슴에 새기게 한다.

나의 진정한 도움은 어디서 오는가? 여기 순례자도 시온 산을 보면서 위로와 기쁨, 그리고 소망을 가졌을 것이나 진정 깨달은 것은 산을 지으신 하나님이심을 기쁨으로 고백하며 찬양한다.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나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인생의 진정한 필요를 채우시는 공급자이시다.

우리에게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셔서 알곡으로 양식을 주시는 전능자이시다. 우리는 어렵고 삶의 곤고함을 느낄 때 자연의 품 안에서 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진정한 안식은 하나님의 품이다.

진정 우리를 지켜주심은 누구인가? 우리의 인생길에서 가장 두렵고 무서운 것은 나 혼자라는 외로움과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광야의 길을 혼자 걷거나, 바다를 혼자 노를 저어 항해하는 자를 생각함은 가장 무서운 그림이다.

야곱은 에서를 피해 도망하는 광야에서 어두움이 그의 길을 막아 광야에 홀로 누어 돌로 베개하고 잠을 자려할 때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해 왔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창28:15) 우리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걸어가면서 밤과 낮을 함께 한다는 것보다 더 큰 기쁨과 힘이 없다.

인생의 순례 길에서 남편과 아내는 최고의 반려자이며 친구와 이웃은 보석처럼 귀하다.

솔로몬은 “한 사람은 패하나 두 사람은 능히 감당한다”(전4:9)는 지혜를 가르치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121:4) 지키신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하시며 지키시고 인도(요14:16)하신다.

하나님의 인도와 지키심을 ‘여호와의 그늘‘(121:5)로 보게 하신다. 그늘은 태양의 피해를 막아주는 총체적 보호하심으로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121:6)는 지키심이다.

8월의 태양이 무섭다. 우리에게 그늘이 있어야 한다. 갈멜산의 승리를 이끈 엘리야는 이세벨의 보복과 피곤으로 지쳐 브엘세바로 피신하여 광야의 로뎀 나무에 앉은 모습을 성경은 조명한다(왕상19:4).

우리는 직사광선과 자외선을 피하려고 그늘로 모이며 손으로 가려 그늘을 만들고, 모자 체양을 넓히며 양산과 선글라스를 동원하지만 진정 태양을 가릴 수는 없다. 그보다 더 큰 가림막이 있어야 완전하다.

사람에겐 사람의 그늘이 없어선 안 된다. 어린 자녀에겐 부모의 그늘인 양육으로 호흡하며 자라면서 스승의 그늘로 눈이 뜨고 배움으로 지경을 넓히며 성장하여 남편과 아내가 돕는 배필로 가정과 삶의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늙으면 자녀의 그늘이 필수다. 그러나 나무도 잎이 마르고 사람도 늙고 시들되 모진 바람에 청청한 가지가 꺾이며 그늘이 되어줄 자녀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픔도 있다.

그늘을 잡을 수 없는 인간의 무지와 무능을 본다. 여기 우리를 따라 오는 영원한 그늘이 있다.

세상과 사람의 그늘은 우리를 끝까지 따라오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오른편에 늘 계셔서 태양을 만드신 그 손으로 그늘의 은총, 환란을 막아주시고 영혼을 지켜 주신다(121:7).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향하는 광야 길에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13:21-22).

우리를 따라오는 그 그늘은 오직 살아있는 하나님의 그늘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임을 선포한다.

이는 진정 우리를 따라서 오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주님을 따라 의의 길로 가도록 인도하시는 이끄심의 축복이 천성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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