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갈등과 투쟁이었다. 에덴의 동쪽에서 아담과 하와가 자기의 죄를 서로 떠넘기기(창3:12)를 시작하여

그의 장남인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살인으로 이어지고 오늘에까지 계속되고 있다.

‘제이 라이트’교수의 “전쟁사”라는 연구논문에 1480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까지

400년 동안에 국가 간의 큰 전쟁이 영국에서 78회, 프랑스에서 71회, 스페인에서 64회, 독일에서 23회, 중국에서 11회, 일본에서 9회,

그 외에 소수 민족 간에 싸움은 평균 300번이며 제2차 대전 이후에도 무서운 전쟁사는 오늘날까지 없는 때가 없었다고 밝힌다.

특히 전쟁하는 국가들은 나름대로 명분을 그럴듯하게 내세우지만, 모두가 국가와 국가의 갈등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같은 민족끼리, 교회와 형제끼리 싸워 피 흘리는 모습보다 안타까움이 무엇인가? 진정 사람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닌 함께 사는 실존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삶 속에서 서로 화목하는 가치를 솔로몬은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낫다”라고 성경으로 훈계한다.

우리는 지금 사면초가(四面楚歌)의 형국에 놓여 있는 기분이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에 돌입했고 북한은 이틀이 멀다고 미묘한 시기마다 미사일을 쏘아대며 중국과 러시아는 한·일간의 틈새를 파고들며 호시탐탐 한반도에 개입하려는 음흉한 비행을 서슴지 않고 맴돌며,

혈맹이라는 미국은 방위보다 방위비 분담금에 더 신경을 쓰는 듯, 고도의 작전을 갑과 을의 구조에서 펴고 있고 호르무즈 해협 파병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하자는 요구까지 강행할 경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체제 사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난 파장이 몰려올 것이다.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평안을 구하며 기도한다.

우리가 진정 평안을 얻어 행복을 누리는 것은 그것을 심고 가꾸며 거두는 수고와 절차가 없이는 안 된다.

우선 복을 주시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리고 평안을 얻으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임한다”(욥22:21)는 분명한 사실을 데만 사람인 엘리바스가 강하게 욥에게 전한다.

사실 욥은 하나님과 화목을 깬 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엘리바스의 논리는 성경으로 우리에게 가르친다. 평안과 복(행복)은 분명 소유(to have)가 아니라 관계(to relate)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과는 바른 예배자로, 다른 사람들과는 섬기는 자로, 주어진 환경에선 늘 자족하는 마음에 만들어지는 현상이 평안이고 그것을 행복으로 누리게 된다. 평안은 편안과는 전혀 다르다.

후자는 돈과 지위와 명예로 살 수 있고 잠깐 누릴 수 있지만, 평안(Shalom)은 위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이는 외적인 성장이 아니라 내적인 인격과 성품이 그리스도처럼 자라나는 성숙이다(엡4:13).

그들은 똑같이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목적으로 자기를 경영한다. 여기에 인생의 보람과 가치 그리고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진정한 평안과 복은 하나님과의 화목에서 시작되며 완성된다. 하나님과 화목이 없이 그가 만드신 모든 피조물과 어떻게 화목을 이룰 수 있겠는가?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3:17-18).

사실 부모와 화목이 없이 자녀들의 가정이 화평치 못한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은 가정평화의 원천이다.

선생님과 관계가 깨어졌는데 학교생활이 즐겁고 좋은 배움과 인격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처럼 참 스승이며 진리이신 주님과 바른 관계는 진정한 지혜와 명철을 얻고 주님을 닮아간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그의 사랑을 입으며(잠8:8:17)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8:21)고 말씀하신다.

나아가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16:7)

하나님과 화목이란? 하나님과 뜻이 맞고 정다운 관계인데 원래 아담은 창조주 하나님과 아름다운 관계로 에덴에서 평안을 누렸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간교한 뱀의 말을 들어 금단의 선악과를 따먹고 화목의 관계가 깨어졌다.

그들은 두려움에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어 사는 존재로 불안과 미움, 더위와 추위,

사고와 질병 그리고 서로를 찌르는 죽음으로 하나님을 등지고 그의 심판을 향하여 달려가는 존재가 되었고 우리는 그의 후손으로 살아간다.

하나님과 화목을 깬 것은 생명의 말씀을 깬 인간의 죄였기에 죄를 해결치 못한 평안과 화목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인이 된 인간이 자기와 화목할 의욕과 거룩, 그리고 의로움과 능력이 전혀 없기에 하나님의 긍휼로 먼저 화목의 장을 제사로 열어 놓으셨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네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출20:24)

하나님과 화목의 처음과 끝은 이스라엘이 제사를 통한 향기로운 만남으로 그의 법도와 명령을 따라 그와 동행하는 평안과 복이었다.

구약의 화목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레13:5)하는 실체를 보는 그림자로서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제한적이요, 일시적이며 온전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온 백성에게 영원한 화목제를 위한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며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암5:22)고 하시고

“이 예수를 하나님이…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라”(롬3:25)고 선포하셨다.

하나님과 화목한 자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의 이름으로 예배(제사)를 드리는 자요,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자로 하나님과 영원히 화목하며 영생의 복을 누리는 자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 사람은 이웃과 화목(고후5:18)하고 주어진 환경을 감사(살전5:18)로 더 큰 감사와 승리를 만드는 강한 자로서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는”(롬12:19) 자이다! 외유내강(外柔內剛)으로 일본을 이기는 비결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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