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들어가자마자 두꺼운 어두움과 맞부딪칠 때 손잡아 좌석을 찾아주는 안내원의 손길이 고마움으로 남아있다.

근래에 들어서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 나도 모르게 가드레일을 잡고 가는 것이 안전하고 힘이 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아가 이는 진정 내가 가드레일을 잡는 것보다 그것이 나를 붙잡아 주는 가드레일의 손을 새삼 깨달아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안전벨트를 위시해서 나를 붙잡아 주는 손들, 배를 띄워주는 부력까지 세상에 너무 많은 손들이 숨어 있다.

무엇보다 나의 몸과 마음, 생명까지 붙들어주시는 전능자의 손길을 새삼 깨달으며 내가 다시 그 손을 향해 내 손을 내미는 인생의 지혜를 깨닫는다.

덴마크의 유명한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어린 시절의 일이다. 그가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기에 추수 때가 되면 어머니와 함께 추수하는 들판에 나가 이삭을 줍곤 하였다.

당시 들판에 떨어진 이삭은 줍는 자의 몫이었기에 누구도 금하는 자가 없었다. 하루는 안데르센이 친구들과 함께 멀리 떨어진 들판에 나가 이삭을 줍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의 관리인은 냉정하고 인색한 자로서 이것도 막았다. 한참 이삭을 줍고 있을 때 어디선가 갑자기 고함소리, “네 이놈들 당당 없어지자 못할까!”하며 그가 마구 달려왔다.

깜짝 놀란 소년들은 도망가기 시작했으나 안데르센은 넘어지는 바람에 붙잡히고 말았다.

“누가 우리 들판에 와서 이삭을 주우라 하더냐?” 그가 소리소리 지르며 회초리를 들어 안데르센의 종아리를 치려하는데 “때리려면 때리세요.

저는 하나도 겁나지 않아요. 하나님이 지금 저를 내려다보고 계시니까요”라며 그가 담대히 말했다.

그러자 기세가 등등하던 관리인이 회초리를 내려놓고 안데르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 내가 잘못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 걸 깜박 잊었구나! 그날 안데르센은 많은 양의 이삭을 주워 가지고 올 수 있었다.”

이새의 막내인 다윗(David)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양치기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왕으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시련과 전쟁의 연속이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대상22:8)고 말씀하셨는가! 그러나 그는 싸움에서 승리했고 영화를 누리며 놀라운 업적을 남겼다.

오늘날 우리도 그를 기리며 그의 이름을 자신과 자녀들의 이름으로 지어주며 자부심과 포부를 갖는다.

사실 다윗은 자기가 살아왔던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붙들어 주심’으로 승리할 수 있었고 존귀한 자리에 세워주셨음을 감격하며 노래하기를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7:18)라며 눈물로 은혜를 노래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고 블레셋과 사울의 손에서도 건져주셨음(삼상17:37)을, “그가 위에서 손을 내미사 나를 붙드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강하기 때문이라”(삼하22:17-18)고백한다.

시편 54편은 다윗의 노래로서 자기의 생명을 사냥하려는 사울을 피하여 십 광야 수풀에 숨었을 때에 하나님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을 그에게 보내어 “두려워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삼상:23:17)고 전해주었다.

그때 십 사람들이 사울 왕에게 와서 다윗이 십 광야 남쪽에 숨은 곳을 알려주었다.

사울은 그곳을 자세히 알아보라고 명한 후 포위하려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보내어 이 사실을 다 알게 하고 마온 황무지로 피하게 하셨다(삼상23:25).

사울은 다시 다윗이 피한 그곳을 알아차리고 그의 사람들이 에워싸고 잡으려 했다(삼상23:26).

그러나 그때 전령이 사울에게 달려와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이 땅을 침노했다”는 위기의 전갈을 받고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다”(23:27-28) 이는 하나님의 붙잡아 주심으로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시54:4)라며 호흡을 찬양으로 노래한다.

다윗을 붙들어주신 그 손을 붙잡는 것이 힘이요, 승리와 축복의 비결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손을 잡기엔 너무 높고 멀며 거룩하고 존귀하기에 그 손이 우리를 붙들어주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이는 곧 길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십자가를 짊어지신 그 손을 먼저 내미시는 사랑의 손으로 은혜이며 축복이다.

불행 속에서도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면 슬픔이 멀어진다는 격언이 있는 데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은 최고의 힘과 용기이며 승리의 보장으로

요한 웨슬리는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무엇보다 세상에 최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고백은 최고의 교훈이다.

하나님이 붙들어주는 자는 첫째, 기도하는 자(시54:2)이다. 다윗은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며 도와주시는 전능자이심을 경험으로 고백하며(54:4)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 하신다”(시55:22)고 가르친다.

둘째, 겸손한 자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최고로 믿고 고백하며 주의 도우심이 없이 살 수 없다는 신실한 믿음이 겸손한 자로 기도자이다.

그러나 주의 도우심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자는 악하고 교만으로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를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며”(시147:6)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신다(시10:17).

셋째,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그 손을 말씀으로 붙잡는 믿음의 손이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과 많은 대적 앞에서도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시3:5)이며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한다”(시3:6)고 믿음의 고백을 듣게 한다.

하나님은 예수 믿고 자녀가 된 우리,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히2:16)을 붙들어주신다고 선포한다. 이것이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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