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싸우고 있는 우리는 일본과도 고도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흔히 일본과 대한민국을 비교할 때 일본의 후지산(富士山)과 우리의 금강산(金剛山)을 비교한다. 일본의 상징이요,

신성시된 후지산은 해발 3.776m로 정상엔 일 년 내 눈이 쌓여 있고 원추 모양을 한 단순함이 특징이다.

한국의 금강산은 1,638m의 최고 높은 비로봉을 중심으로 하여 북쪽으로는 오봉산 옥녀봉 선창산 금수봉 서쪽엔 영랑봉 남쪽엔 월출봉 일출봉, 동쪽엔 세존봉 등이 솟아 있고 작고 아름다운 봉우리가 일만 이천이 된다고 자랑한다.

일본은 후지산처럼 한 우두머리, 오야붕(親分)과 꼬붕(子分)이 대동단결한 민족적 특성을 나타내고 우리나라는 각자가 다 다른 얼굴과 가슴을 작은 봉우리로 표현하며 서로가 잘났다고 머리를 드는 모습으로 비유한다.

 

요즘 대한민국은 편안한 날이 없고 서로 옳다고 싸우며 삭발하는 모습이 세계의 창에 연일 비춰지고 있다. 작고 좁은 게다가 분단된 대한민국이 힘을 합쳐도 일본을 따라잡기가 불가능해 보이는데 서로 물고 싸우는 밤중에 일본은 더 멀리 새벽을 날아갈 것이 아닌가?

우리는 내일이 불안하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한미,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고, 사우디의 원유시설이 테러로 파괴되어 세계뿐 아니라 우리에게 큰 타격으로 밀려오며 아프리카 돼지 열병까지 파고 들어와 살아있는 생명까지 다 처분하고 있다.

태풍 속에 나라의 번영과 평안을 위한 무수한 싸움이 서로의 멱살을 잡고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진정 평안은 쟁취에서 오는가? 참 평안을 기원한다.

 

평화를 뜻하는 영어의 피스(peace)는 라틴어 팍스(pax)라는 말에서 유래 되었다. 이는 누가 가져다주는 평화가 아니라 싸우고 이겨서 쟁취하는 것 즉 전투적이며 공격적인 것으로 ‘팍스 로마나’(Pax Romana)란 말에 우리는 익숙해 있다.

BC 1세기 말 제정을 수립한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시대부터 5현제(五賢帝) 시대까지의 200년간 지속된 로마와 지중해 일대의 평화를 뜻한다.

당시에 변경의 수비도 견고했고 이민족의 침입도 없었으며 국내의 치안도 확립되어 도시가 번성하였다. 이 평화는 강력한 로마제국의 힘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나 로마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평화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며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하셨다.

주님이 말씀하는 평안(샬롬(שלום)-에이레네(ειρηνη))은 무력과 힘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을 말한다. 이는 인간의 힘과 어떤 조건이 충족될 때만 이루어지는 조건적인 평강이 아니라 어떤 때에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 평강을 말한다.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평안으로 세상의 환란과 불의를 이기는 힘(시29:11)이며 완전한 정의가 실현된 승리와 축복인 것이다.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다가 헤롯 왕에게 잡혀 감옥에 갇혔고 쇠사슬에 묶여 내일이면 처형이 될 위기 속에서도 평안의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행12:6-7).

 

주님의 평안은 우리의 심령 속에 머무는 내적 평안으로 영혼을 부요케 하여 범사가 잘되고 강건케 하는 비밀스런 축복이다.

영혼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며 마음은 우리의 육체를 관리함으로 외적인 요소에 지배를 받는 평안이 아니라 환경과 조건을 다스리는 주의 지혜와 능력의 평안이다.

나아가 그 평안은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는 언약으로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사54:10)고 하신다. 그 약속을 믿고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서 평강으로 지키신다”(사26:3)

 

하나님은 미디안과 전투를 앞둔 기드온에게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삿6:23)고 말씀하셨고 그는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샬롬이라”(6:24), 즉 하나님이 곧 평안(God is Peace)이요, 평화라고 고백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Peace I leave with you)라고 말씀하심은 ‘평안이 너희에게 가게 한다’고 하심으로 그 주체가 예수요, 자기가 곧 평안이심을 밝히셨다. 천군 천사들도 이스라엘이 대망하던 그 평화가 예수로 오심을 선포했다(눅2:14).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 때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막4:37) 되었을 때 예수님은 배의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깨우며...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4:38) “예수님께서 깨어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졌다”(4:39). 예수님은 광풍 속에서도 잠으로 평안임을 보여주셨고 평안으로 구원해 주셨다.

 

하나님은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성읍의 젖을 빨 것이라”(사66:12)고 복을 선포하신다.

평강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주심은 곧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고, 그는 자기의 몸을 찢어 하나님과 평화를 만들어 주셨다(엡2:14)

나아가 평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심은 그를 믿는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요14:26) 우리 안에 거하시며 주의 평강을 영원히 소유하도록 축복하신다.

그리하여 성령은 평강의 근원으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8)고 밝히신다.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자. 주의 평강의 강이 흐르는 곳마다 반목과 질시, 불안과 기근이 떠나고 평안과 화목이 자란다.

가정에 흐르면 부부가 화해하고 화목한 가정, 직장엔 경쟁과 대립의 관계에서 협력과 동반의 관계로 사회에 흐르면 범죄가 그치고 분쟁이 해결된다. 교회에 흐르면 용서와 사랑의 연합으로 부흥의 역사를 이룬다.

진정 가난은 전쟁이 주범이며 사탄의 궤계(詭計)로 성령으로만 이길 수 있다. 바울은 교회들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롬1:7)을 기원하고 축복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케빈 2017.04.29 273
163 초대의 글 2019. 10.6 유연수강도사 2019.10.12 1
» 나의 평안을 주노라(요 14:27) 2019. 9.25 유연수강도사 2019.09.26 4
161 야곱과 요셉의 만남(창 46:29-30) 2019. 9.15 유연수강도사 2019.09.17 4
160 하나님이 붙들어 주는 자(시 54:1-4) 2019.9.8 유연수강도사 2019.09.11 3
159 영광스런 영광교회(엡1:21-23) 2019. 8.18 유연수강도사 2019.08.20 7
158 하나님과 화목하라(욥 22:21-22) 2019. 8.11 유연수강도사 2019.08.13 3
157 여호와의 그늘(시121:1-6) 2019. 8.4 유연수강도사 2019.08.13 6
156 요나의 기도(욘 2:1-2) 2019. 7.28 유연수강도사 2019.08.13 2
155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1-5) 2019.7.21 유연수강도사 2019.07.21 15
154 주의 옷에 손을 대라(막 5:34-43) 2019.7.14 유연수강도사 2019.07.21 9
153 감사는 소유다(출 23:14-17) 2019.7.7 유연수강도사 2019.07.09 50
152 어리석은 부자(눅12:13-21) 2019. 6. 30 유연수강도사 2019.07.02 18
151 이스라엘의 분단과 끊임없는 싸움(왕상 14:21-31) 2019.6.23 유연수강도사 2019.06.23 36
150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눅 24:13-35) 2019.6.16 유연수강도사 2019.06.23 14
149 평안의 잠(막 4:35-41) 2019.6.9 유연수강도사 2019.06.15 19
148 진정한 애국(렘5:1, 시10:1-4) 2019.6.2 유연수강도사 2019.06.15 19
147 행복한 가정의 원리(창2:18-25) 2019.5.26 유연수강도사 2019.05.25 16
146 선택이 아닌 필수인 성경(갈6:6-8) 2019.5.19 유연수강도사 2019.05.25 14
145 이삭의 순종(창22:1-14) 2019.5.12 유연수강도사 2019.05.18 52
144 하나님의 자녀(요1:12-13) 2019. 4.28 유연수강도사 2019.05.04 33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