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자전하면서 태양의 주위를 돌기에 밤과 낮이 생기고 공전을 하면서 계절의 변화가 일어난다.

특별히 지구의 적도 부근엔 태양열을 더 많이 받아 지역적으로 열량의 불균형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저위도 지방의 따뜻한 공기가 바다로부터 수증기를 공급받으면서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동반하여 고위도로 이동하는 기상 현상으로 태풍이 생긴다.

지난 한반도 남서부에 타격을 입힌 제8호 태풍 바비(BAVI)보다 위력이 센 제9호 태풍 마이삭(MAYSAK)이 북상하여 파괴와 살상까지 할퀴고 간 상처가 너무 컸다.

기상청은 마이삭의 중심기압은 955hPa, 강풍의 반경은 350km 최대풍속은 49.2m/s라고 한다.

제주 산지는 최고 1037.5mm의 물 폭탄이 떨어졌다. 게다가 제9호 마이삭보다 더 강한 제10호 태풍 하이선(Hsishen)이 올라오고 있다니 바람 잘 날 없다는 형국 속에 있는 실정이다.

바람의 세기가 초속 40m를 넘으면 사람은 물론 바윗덩어리도 날려버리고 달리는 차도 뒤집을 수 있는 위력을 실감했다. 우리는 못 오게 할 순 없지만 피할 길이 있음을 안다.

 

강한 태풍이 사정없이 몰아칠 땐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첫째는 정면으로 대항한다.

바다의 망대처럼 꼿꼿이 다리에 힘을 주고 주먹을 불끈 쥐어 어둠을 비취는 빛을 발하며 이겨내는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정면으로 대항하여 이긴 것처럼 태풍보다 강하면 이긴다. 코로나보다 강하면 마스크도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약한 자는 쓰러진다.

둘째, 고개를 숙이고 납작 엎드려야 한다. 그냥 서 있거나 대항하면 물매를 맞아 큰 나무가 뿌리 째 뽑히고 전신주가 꺾어지며 약한 것은 날아간다.

그러나 화단에 몸을 낮춘 잡초는 연약할지라도 뽑히지 않고 쌩쌩함을 본다. 바람이 강할수록 빨리 지나간다.

인생의 불화살이 날아오면 납작 엎드려야 한다. 삶의 어두움과 모진 태풍이 불어 닥치면 고개를 숙이며 엎드려 손을 모음은 겸손이며 지혜이고 강한 자이다.

셋째, 바람보다 더 크고 강한 바위 뒤에 숨거나 피하고 그것에 붙어 있는 자는 태풍을 이기는 비결이다.

솔로몬은 교훈하기를 “약한 종류로되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과 임금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손에 잡힐 만하여도 왕궁이 있는 도마뱀이니라”(잠30:26-28)고 그들의 지혜로운 자기보호를 칭송한다.

넷째, 강한 태풍을 이기는 역설적인 방법으로 그것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태풍의 방향과 세기에 자기를 맡기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은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왕하2:1) 하셨고 엘리야는 그의 제자 엘리사와 함께 요단을 건넌 후 길을 갈 때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왕하2:11). 바람과 함께 하늘까지 올라간 엘리야를 조명한다.

태풍은 우리에게 적이요, 원수가 아니라 우선, 수자원의 공급원으로 물이 부족한 지역에 가뭄을 해소케 하고 다음으로,

저위도 지방에 축척된 대기층의 에너지를 고위도 지방으로 운반하여 지구의 남북 간에 온도를 유지해 주며 나아가, 시계방향의 반대로 휘몰아치는 바람과 비는 바다의 적조 현상을 해소하는 심술궂은 대청소자란 사실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코로나로 시작된 복합적인 태풍과 파도가 일어나고 정치 경제 사회 특히 교회의 문짝을 막고 부수는 회오리가 일고 있다.

연일 코로나의 진원지가 교회요 신도인 것처럼 표적이 되어 교회당이 부서지고 십자가가 날아가 버리는 광풍이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는 상대를 의심하게 만들고 나에게서 떨어지라는 간격을 만들며 고립의 울타리를 높이 세우고 바벨탑을 쌓아 올린다.

마스크로 입을 막아 미소를 삼켜버린 어둠과 두려움의 세상으로 굳혀가고 있다.

연한 순처럼 자라던 초 신앙은 금세 생수의 기갈로 타버렸고 뿌리가 작고 잎이 무성한 나무는 태풍에 뽑히고

채 익지 않은 열매들이 떨어지며 길을 잃은 양의 울음소리가 점점 세상의 노래로 변하고 있다.

코로나의 구실로 하나님의 날을 자기의 여유로 만들고, 그의 낯을 피하여 자기가 가고 싶은 다시스로 항해하는 요나처럼 TV 밑에서 핸드폰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아마도 코로나의 태풍이 영적으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키질이 아닌가 하는 영감이 두려움으로 마음에 쌓여만 간다.

 

우리는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해 내려고 바람을 이용하며 타작을 위해 인공적으로 바람을 일으켜 키질한다.

진짜를 가리기 위함이다! 유능한 뱃사공은 심한 풍랑과 험한 파도에서 알아보고 역적과 충신은 나라가 어려울 때 드러난다.

순금과 찌꺼기를 분류해내기 위하여 불무 불을 사용하고(겔22:20) 정확한 무게와 길이를 알기 위해 저울과 정규(자)를 사용한다.

기드온은 미디안과 싸우기 위하여 용사를 뽑을 때 하나님의 명령대로 냇가에서 물을 먹는 모습으로 키질을 하여 300용사를 가려냈다(삿7:6)

우리는 예수님이 성경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 모든 제자가 다 도망가고 피하여 숨었던 사실(마26:56)을 보면서 그 사건은 진정한 제자를 알아보는 시금석이요,

태풍이며, 키질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십자가의 태풍으로 다 날아갔던 제자들을 예수님은 부활로 다시 찾아오셨다.

사망을 이긴 승리를 주시기 위하여 찾아오심으로 이것이 사랑이요, 은혜다!

 

코로나로 인한 복합적인 회오리와 태풍이 부는 이 시점에 더욱 믿음에 견고하여 알곡이 되고 잃은 양이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온 천국의 백성으로 보호받기를 축원하며 그 비결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자(요15:4), 곧 그에게 속해 있는 자(고전15:23)이다.

우리 영광교회의 종탑은 15층 높이까지 세워져 천국의 열쇠로 아파트의 뭇 영혼을 품고 있는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바람을 많이 타고 있다.

더구나 그 위에 2.2t의 대형 십자가가 앵커 볼트 5개로 매달려있다.

태풍이 분다 하면 두려움으로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며 기도를 드린다. 평온한 때는 보이지 않던 십자가가 모진 비바람과 천둥이 일면 크게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스라엘이 평안하면 하나님을 잊고 우상까지 섬기며 죄에 빠져 결국 대적에게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그들을 섬기며 울음으로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이스라엘의 뻔뻔함과 어리석은 역사는 우리를 보는 신령한 거울이다.

어느 날 매달려있는 십자가가 크게 보이며 교회당 건물이 십자가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가 교회와

온 성도들을 붙잡고 있다는 진리가 보이며 구원을 뿌리고 있는 주님의 은혜가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주님이 품고 있는 모든 자는 그의 지체요 교회임을 선포하는 복음이 크게 들어왔고 그 속에 나와 당신이 있음을 보게 했다.

나아가 밤이 어두울수록 별빛은 더욱 빛나는 것처럼 인생이 칠흑같이 어둡고 광풍이 심할수록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과 십자가의 복음이 더욱 크고 강하게 들리는 은혜가 흐르고 있었다.

 

코로나의 회오리와 태풍은 마귀의 속성 그 자체이다. 아담과 하와를 거짓으로 꾀어 선악과를 따먹고 죽음에 이르게 했고,

그러고도 자기의 죄를 상대에게 전가시켜 살 중의 살이었던 서로를 불신으로 금이 가게 했다.

그리하여 뱀이 저주받아 배로 땅을 기어 다니게 되었고 자연도 저주를 받아 진정한 에덴을 상실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인간을 이간시켜 갈라놓는 마귀의 속성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과 인간을 하나로, 우리와 이웃을 하나로 묶어 주님의 몸이 된 교회의 공동체가 만들어졌고,

하나님의 나라로 점점 확장해 나가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의 탈을 쓴 사탄이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떼어 놓고 있다.

사탄의 권세는 당시 최고의 종교지도자들인 유대교의 장로와 빌라도의 법정과 온 군중들의 심리를 사용하여 만장일치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형으로 심판하고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사탄의 권세가 승리한 것 같았으나 예수님은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성경말씀대로 부활하셨다.

이는 공의의 하나님, 의로우신 심판장이 예수를 살리셨다. 이는 그가 죄가 없다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정이요,

그의 죽음은 그를 믿는 우리의 죄를 대신한 대속 제물이었음을 만방에 선포하셨다.

할렐루야! 죽음보다 더 강하고 센 것은 무엇인가? 생명의 부활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아담의 후손인 인간의 죽음은 모두를 지옥으로 몰아가는 회오리와 태풍이다. 무거운 죄짐을 지었기에 더 가볍고 빨리 들어가는 곳이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께서 믿음의 손을 내미는 우리에게 그의 죽음을 주셔서 우리를 사망과 지옥의 형벌에서 건져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시며 천국 백성으로 삼으셨다.

그 증거로 교회가 세워졌다. 말세지말을 당한 우리에게 믿음의 알곡과 쭉정이를 까부르는 회오리와 태풍이 불어도 알곡은 체질하는 안으로 들어오고 쭉정이는 밖으로 날린다.

인생의 어두움과 광풍이 심한 파도를 일으켜 우리를 흔든다 해도 주의 몸된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자가 천국으로 들어오는 자이다.

태풍이 심할수록 알곡과 쭉정이는 더 선명하게 갈라지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은 더욱 강하게 들리는 법이다.

영혼과 육체, 경제와 정치, 삶이 곤고할 때 손을 모으고 무릎을 세우며 허리를 굽히자.

부활로 승리하신 주님께 붙어있는 자는 반드시 승리의 부활로 나오며 마지막 심판에서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쓰며 영생을 누린다.

그는 주님과 함께하는 제자다. 말씀으로 그의 음성을 듣고, 기도로 주님께 구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축복의 사람이다(요15:4-8).

우리는 놓고 갈 것을 붙잡고 있기에 잡아야 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을 놓치는 어리석음이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이를 모르거나 부정하는 자는 사실(진리)이 당신의 무지와 거짓을 역사의 뒤안 길로 날려버릴 것이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꺼지지 않는 불 속으로 불어버릴 것이다. 예수 안에 그의 몸된 교회 안에 알곡으로 부활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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