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아니 하실지라도(단3:18) 우리는 밥을 먹었어도 배고픔을 느끼며 먹고 입고 쓸 것이 있음에도

더 좋은 음식과 더 넓고 비싼 환경에서 어깨에 힘을 주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빈곤이 있다.

상대적 빈곤(Relative Poverty)이다. 20여 년 전 이곳 월곡동 달동네는 그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공간으로

여자(남자) 친구들을 자기의 집으로 데려오는 자가 절대 없었다고 한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느꼈던 한 가지는 그들은 우리보다 키가 크고 뚱뚱하기에 나도 체격이 있는 편이었으나 아이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필리핀이나 베트남 사람들 앞에서는 기골이 장대한 생각과 부유한 감정이 교만스러움으로 스민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로 인하여 정치 경제 특히 교회와 성도들이 곤고해진 지금,

우리보다 더 어려운 위기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한 이들을 말씀으로 만나보는 것은 연약해진 우리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주어 믿음을 깨우고 승리를 얻게 할 성령의 역사를 확신하며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성경으로 만나본다.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란 뜻인 다니엘(Daniel)은 B.C 605년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게 사로 잡혀간 유다 청년 중의 하나였다(단1:1).

나라와 가정을 잃고 타국의 포로로 끌려와 사람 아래에서 산다는 것은 절대적 빈곤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자기들이 비록 포로로 끌려왔지만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포로가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통치자로

이 모든 환경도 그의 섭리 안에 있다는 신앙이 견고했다.

그리하여 다니엘은 날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열고 하루에 세 번씩 감사하며 기도(단6:10)하는 삶은

코로나로 변한 우리의 상황에서 변치 말아야 할 절대적 가치를 모범으로 보게 한다.

하나님은 다니엘과 그 친구들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단1:7)고 성경은 증거 한다.

느브갓네살 왕의 통치 2년, 어느 날 비상한 꿈을 꾸고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깊은 시름에 빠져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분명 자기의 꿈이 지금과 미래를 현실로 이끄는 엄청난 계시인 것 같았는데 그 꿈의 진실은 무엇인가?

잠 속에 있던 꿈이 현실로 깨어났을 땐 그 꿈꾼 것은 알지만 꿈의 내용을 다 잊어먹고 아무것도 모르니 더 알고자 하는 안달함과 큰 불안과 두려움으로 몰려왔다.

 

느브갓네살 왕은 나라 안에 모든 지식과 지혜를 동원하고 박수와 술객들까지 동원했으나 왕의 망각을 회생시킬 수 없었다.

이는 무에서 유를, 죽음에서 생명을 잉태시키는 꼴이었기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왕은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하였다”(단2:12). 엄청난 살인행위였다.

이에 다니엘이 “왕께 구하기를 시간을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단2:16) 아뢰고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에게 기도의 요청을 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 외에는 해답이 없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것은 꿈을 가르쳐달라는 것보다 자기와 친구들 그리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이 죽임을 당치 아니하도록 간절히 부르짖었다.

생명을 사랑하는 다니엘의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은 감동하셨고 잊어버린 왕의 꿈을 살려냈으며 그 해석까지 풀어주셨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을 감동하게 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벨론의 존귀한 지도자로 쓰임을 받는 감동의 역사가 일어났다.

바벨론 제국의 두라 평지에 느브갓네살 왕이 자기의 위대한 통치와 명예를 찬양하는

금신상(Image of gold), 높이가 60규빗, 넓이가 6규빗이 되는 거대한 신상을 세워 김일성처럼 자기를 신격화하는 낙성식(제막식)이 벌어졌다.

크고 중요한 의미가 선포되는 시작이었다. 이 낙성식은 바빌론 128도 제국 산하의 모든 총독과

수령, 행정관과 모사, 재무관과 재판관, 법률사와 지방 관원들 그리고 유명한 악사들을 총동원하여 거국적인 경축행사로 거행되었다.

왕은 그 낙성식에 참여한 자들에게 악기소리에 맞추어 엎드려 절(fall down and worship)을 할 것이며

그렇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으라고 명했다(단3:6). 참으로 무서운 악 벌을 가함은 그만큼 중요함을 반증하지만 악한 영의 역사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땅에 엎드렸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그곳에 절은 고사하고 뻣뻣이 서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계속했다.

당시 정치와 전쟁은 그들이 섬기는 신들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었기에(대하35:21) 국가의 수호신으로 섬기는

그 신상에 대한 모독이나 부정은 곧 국가와 왕에 대한 반역으로 무서운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이에 그들의 죄는 막중한 것으로 왕의 진노와 형벌이 그들을 겨누고 있었다.

느브갓네살 왕은 갈대아 사람들의 참소를 듣고 진노했으나 금방 왕 다운 분별력을 되찾아 어쩌면 그것이 모함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전례 없는 관용을 베풀어 그 우상에게 절할 수 있는 한 번의 기회를 다시 부여했다.

사실 왕은 다니엘의 추천으로 그 친구들을 세워 바벨론을 다스리게 한 은혜를(단3:12) 베풀어 준 은인으로 목숨을 바쳐 충성해야 할 종이었다.

나아가 그들을 살리고자 하는 왕의 긍휼과 자비가 배여 있는 기회로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단3:15)고 설득했다.

그때 다니엘의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 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6-18)라며 분명하게 대답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결정적으로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며 풀무 불 속으로 들어가서 죽겠다는 것이다.

죽음은 생명의 마감으로 생명 속에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의 종결이다.

돈, 명예, 권세 가정, 사업.. 모든 것을 다 놓아야 하는 허무와 슬픔, 아픔과 절망, 말할 수 없는 비극이 곧 죽음이다.

모든 사람은 생명의 아름다움을 더 오래 누려보려고 약과 음식 운동과 건강식품, 모든 것에 호소하며 구걸한다. 그러나 생명의 호흡은 하나님의 주권이요 진정한 평안과 형통도 그의 은총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등잔의 기름이 다 타서 꺼지듯이 생을 마감하며 죽음을 맞는 자가 있는가 하면 타고 있는 양초의 불을 끄고

남아있는 촛대와 남아있는 기름을 국가나 타인을 위하여 장렬히 불사르는 죽음, 즉 사용하는 죽음이 있다.

여기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아직도 젊은이로서 지금껏 살아온 것보다 살날이 더 많은 앞이 창창한 인생이다.

포로로 끌려왔던 자들이 바벨론의 지도자가 되어 그들의 권세와 재물, 평안과 미래가 보장된 모든 것을 묶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일에 지금 죽음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대단한 결단, 최고 투자, 최고의 지출로 가지고 있는 전부를 쓰는 것이다. 우린 무엇을 위하여 이런 투자를 할 것인가?

우리로 하여금 죽음보다 더 귀한 최고의 가치를 발견케 한다.

분명 우리는 죽음을 사는 시한부적 인생으로 남은 생명을 다 투자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실패와 상실이 아니요 어리석음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3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베드로도 도마도 요한도 스데반도 바울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기의 나머지 생명을 묶어 죽음으로 사용하는 순교를 했다.

그로인하여 우리에게까지 그 생명의 복음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영국의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40) 선교사는 제너널 셔먼호에 승선하여 대동강에서 성경 한 권을 전하면서 1866년 9월 2일, 27세에 참수를 당하였다.

일제강점기때 평양의 산정현교회를 시무하던 주기철 목사님은 일본의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고 약 6년간 옥중에서 투쟁하다가 1944년 4월 21일 밤 47세로 순교를 당하였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 계명에 반하는 우상숭배요, 둘째, 신앙 양심과 자유를 억압하는 탄압이며,

셋째, 교회의 순수성과 거룩성을 지키기 위함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민족독립과 해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위대한 죽음이었다.

느브갓네살 왕은 분이 가득하여 풀무 불을 일곱 배나 강하게 하여 즉석에서 그들을 던지라고 명했다.

군대의 용사들이 그들을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불구덩이에 던져버렸다. 얼마나 뜨거웠던지 던졌던 그들이 불타서 죽는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들을 보고 있던 “느브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단3:24-25)라고 고백했다.

느부갓네살 왕은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3:26)고 불렀다.

그들은 불 가운데에서도 머리털 하나 타지 않고 나왔다. 느부갓네살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3:28)라며 조서를 내리기를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3:29)고 고백하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고 귀한 자리에 앉혀주었다. 할렐루야! 느브갓네살은

분명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를 묶인 채로 불구덩이에 던졌으나 다 풀려진 자유로운 모습이었고 더구나 3명이 아닌 4명이었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하나님이 함께하심이요, 왕보다, 불보다 강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었다.

사실 하나님이 불구덩이 속에서만 함께 하셨는가? 그것은 아니다. 포로 생활 속에서도 늘 함께 계셨다.

사실 다니엘과 친구들은 보았으나 느브갓네살 왕이 못 본 것이다. 주님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하셨다.

신령한 눈을 열어 주님을 보며 성령으로 함께 하심을 늘 경험하자!

 

우리는 코로나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보다 생사가 달린 불시험과 위기 속에서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승리한 다니엘과 세 친구가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단3:18)라는 믿음은 죽음으로 생명의 말씀을 지키겠다는 결단으로

죽음의 불속에서 구원을 받고 느브갓네살 왕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며 그를 살리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었다.

느브갓네살 왕은 자기가 무시하던 구원의 하나님을 높이고 전하며, 하나님을 믿는 자가 존귀한 자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더 존귀한 곳에 지도자로 쓰임 받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기억하자!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33세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기억하자. 주님은 33세 이후의 영원한 삶,

하늘의 보좌와 무한한 영광을 다 묶어 십자가에서 단번에 죽으심은 그를 믿는 우리에게 그의 죽음을 주시되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영광, 영원한 천국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며 오른편에서 그늘이 되신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그분을 위하여 살고, 죽음보다 더 귀한 영생을 죽음을 다하여 지키는 믿음의 승리를 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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