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집사님으로 부터 살을 베어내는 아픈 소식을 들었다.
보이스 피싱으로 삼천만원을 사기 당했다는 것이었다.
요즘 코로나를 이용한 사기가 많아졌고 특히 어려운 사람들에게 정부가 빚을 내어 지원금을 나눠주는 양 한 마리를 잡아 가려고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주의보를 뉴스로 들었다. 돈 뿐 아니라 심장까지 도려가는 악질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기에 넘어가지 않는 지혜를 구하며 어려운 자들을 돕는 따뜻한 가슴과 힘 있는 영광의 손이 되기를 축원한다
 

우리는 정보를 먹고 사는 존재로 사실(fact)인지 가짜(fake)인지 구별하는 능력 곧 지혜가 필수다.

진정 지혜로운 자는 누구인가? 명석한 두뇌, 해박한 지식과 깊은 성찰, 풍부한 경험 등을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속에 있고 컴퓨터의 인공지능(AI)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영역을 이끌어가며 우리도 그것을 크게 신뢰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IBM의 인공의료지능 왓슨(W.atson)이 가천대학 병원에서 진료하고 있다.

의사의 진료와 IBM의 왓슨과 차이가 날 때 환자들이 무엇을 선택하는가?

대부분이 왓슨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AI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지식과 지혜의 총아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그러나 결단코 하나님을 외면하거나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식은 살 수 있으나 참 지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지식은 그만큼 많이 배웠다는 자랑이나, 지혜는 더 이상 모른다는 겸양이다. 진정 지혜를 추구하는 자는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사모하고 듣는 자이다.

 

로마의 지방 총독인 서기오 바울(Sergius Paulus)은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아 그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불러 그 말씀을 들으려 했다.

성경은 그를 “지혜 있는 사람이라”(행13:7)고 밝힌다.

그러나 뭇 사람을 속이며 능력으로 찬사를 받는 마술사 엘루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도 바울은 그를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이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자”(행13:10)라고 책망하며 저주한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그 비밀을 사도인 바울에게 계시해 주셨다.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성경으로 듣고 진정 지혜롭고 복된 인생을 경영하자!

 

사도 바울은 선교사로 세움을 받고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첫 번째로 말씀을 전하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행13:16).

그의 메시지는 명문의 가말리엘 학문과 경험 그리고 주 하나님을 만난 최고의 것을 듣게 하는 지혜를 쏟으려 한다.

지혜는 무엇보다 옳은 것을 알려주는 것이 특징인데 듣는 자가 귀머거리면 음악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은 믿고 아멘으로 받아야 한다.

이것이 자기의 무지를 깨닫는 겸손으로 최고의 지혜를 모셔드리는 유일한 통로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핵심은 무엇이었나? 바로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당신의 지혜와 능력을 어떻게 우리에게 주시는가?

조그마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그의 엄청난 복음의 비밀을 조명하며 듣게 하신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 있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의 두 아들 중에서 이삭을,

이삭의 두 아들 중에서 야곱을 택하여 언약을 맺고 그의 후손을 창대케 하여 이스라엘로 나라를 세우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들에게 말씀으로 율법을 주셨고, 가르치시며 인도하시고 보호하셨다.

당시 고작 70명에 불과했던 야곱의 가족이 출애굽 당시엔 20세 이상의 장정만 해도 60만 명이 넘는 거대한 민족, 이스라엘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에서 바로의 노예로, 사람 아래의 사람으로 고역에 지쳐있을 때 하나님은 큰 권능으로 그들을 인도해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후 40년을 그들과 함께 광야를 걸으셨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늘이 되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시며 하늘의 만나와 반석의 생수를 먹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거친 광야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하고 불평하며 패역한 걸음으로 따라왔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면서 자녀를 품은 엄마처럼 줄곧 사랑으로 인도하셔서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셨다.

그리고 가나안의 일곱 족속 곧 헷 족속,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족속을 멸하시고 그 땅과 소유를 다 기업으로 주셨다.

애굽의 종이었던 이스라엘을 가나안의 주인으로 만들어 땅을 지파별로 분배까지 해 주셨다. 이는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지혜로 알게 하신다.

 

하나님은 가나안에서 노예의 근성이 배어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사사(judge크리타스)를 세워 재판하고

이방 민족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군대장관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이는 여호수아부터 선지자 사무엘 시대까지 약 300년(BC1390-1050) 동안 하나님의 통치가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자신들을 위한 왕을 세워 달라(행13:21)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이는 모세 때부터 이어져 온 하나님의 통치, 신정(Theocracy)을 거부하고 열방의 나라처럼 왕을 세워 이스라엘을 경영해보겠다는 주장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한 방편으로 기뻐하지 않으셨으나 그들의 원대로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이스라엘의 왕정은 전 과정을 살펴볼 때 지혜가 아니었고 성공이 아니었다.

결국 그들이 왕으로 세운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고(삼상15:23),

464년을 이어온 이스라엘의 왕정은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두 눈이 뽑힌 채 결박되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감(왕하25:1-7)으로 왕정의 막을 내린다.

하나님의 뜻을 어긴 처음과 끝을 보게 하는 지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전능하신 지혜와 능력으로 행하시는 그의 신실하심을 사도 바울은 강조한다.

인간적인 동기에서 왕을 요구한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이요,

잘못된 것이었으나 하나님은 그 요구에 응해주시며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는 방편으로 삼으셨다.

사실 왕으로 인하여 그를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를 제한받게 되었고 그의 종이 되고 말았다(삼상8:9-19)

그리고 사울 왕의 실패는 하나님의 후회와 이스라엘에게는 큰 해로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한다.

하나님은 베냐민 지파의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웠다.

그는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는데 불레셋과 전쟁에서 패배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삼상31:4).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폐위하시고”(행13:22)라고 말씀하신다. 이를 직역하면 ‘그가 그를 옮기신 후에(After removing Saul)’라는 뜻이다. 왜 그를 그렇게 하셨을까?

 

사울 왕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제사장을 무시하고 스스로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거슬렸을 뿐 아니라(삼상13:9)

“가서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없어지기까지 치라”고 명하셨으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삼상15:18-19)라며 사무엘은 통탄한다.

이는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고 정죄하며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15:23)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입술을 대변했다.

하나님은 청지기의 직을 빼앗은 것(눅16:4)처럼 사울을 폐위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세우시는 그의 권세를 지혜로 보게 하신다.

 

하나님은 사울 왕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며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13:22)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다윗을 ‘만났다’ 하심은 ‘내가 발견했다(Have found)’는 의미로 마태복음에 사람이 귀한 보물을 발견한 것(마13:44)처럼

하나님은 다윗이라는 보물을 발견했다는 기쁨과 뿌듯함을 표현한다.

과거를 생각건대 인간 사무엘의 눈에는 다윗이 발견되지 않았고 이새의 장자인 엘리압이 합당한 자로 들어왔으나(삼상16:6)

원래 보물은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나아가 마구간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도 외모만 보는 자에겐 나사렛의 천한 사람으로만 보인다는 사실이다. 주님께 보물로 발견되는 지혜를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은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an after my own heart)”이라고 하심은

‘카타’라는 전치사로 ~의 뒤를 쫓는, ~을 따라, 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란 뜻은 ‘내 마음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은 그분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을뿐더러 앞서지도 않는 사람으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행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가 아무 죄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윤리적으로 보면 다윗은 사울 왕보다 더 악한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유부녀인 밧세바를 간음하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남편인 우리아를 전쟁터로 보내 죽게 만들어 살인을 저지른 자였다(삼하11:15).

그럼에도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심은 무엇인가?

첫째, 죄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 철저히 회개했고(삼하12:13),

둘째, 비록 왕이었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왕이심을 고백하며 살았고(삼하7:18-29),

셋째,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물어 그 뜻을 앞세우고 쫓아간 자(삼하2:1 대상14:10)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은 왕들을 나열할 때 “다윗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사람”(왕상15:11)이라고 아사 왕을 칭찬하시는 반면,

하나님 앞에서 악하게 행한 사람을 “다윗의 마음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한 사람”(왕상15:3)이라고 아비얌을 책망하신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왕의 모델이 되었다.

 

하나님은 다윗을 엄청난 복으로 대대에 이르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원자로 오시는 혈통과 통로로 삼으신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행13:23).

여기 하나님의 약속은 소위 다윗의 언약(David Covenant)으로 불리는 삼하7:8-16에 기록된 내용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첫째, 다윗을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는다.

둘째,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나라를 영원히 견고케 하신다.

셋째, 다윗의 후손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다.

넷째, 다윗의 후손은 여호와의 아들이 되고 여호와는 그의 아비가 되시며

다섯째, 범죄시 징계는 할 것이나 그 위는 결단코 빼앗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 다윗 언약(David Covenant)의 결론적 축복은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사 전 인류의 구속주가 되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택하신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언약하신 대로 다윗의 씨에서 이스라엘의 구주 예수가 나게 하셨다(마1:1).

왕 중의 왕으로 오신 주님은 하나님의 비밀로 우리를 통치하고 계시다.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으로 약속을 지키는 신실하신 그분을 믿고 따라가는 자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다윗처럼 세워주심을 믿는 것이 지혜다.

 

진정한 지혜자는 절대적인 진리와 가치를 바로 알고 따라가는 자이다.

어두운 밤 큰 군함을 이끌고 가는 항로 앞에 조그마한 불빛이 정면으로 들어온다.

함장은 그 불빛을 향하여 방향을 바꾸고 비키라고 명한다.

그러나 그 불을 조종하는 자의 메시지는 너희들이 방향을 틀고 항로를 바꾸라고 전한다.

이때 함장은 화가 나서 진정 비키지 아니하면 발포하겠다고 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너는 누구냐? 물었다.

그때 나는 망대라고 힘주어 전달했다는 이야기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말씀을 믿음으로 들어 나의 향방을 바꾸며 그를 따라감은 최고의 지혜이며 승리의 보장이다.

하나님은 다윗처럼 믿고 따르는 사람을 쓰신다. 나아가 그의 뜻을 이루는 복된 도구가 될 것이다.

코로나에게 내 앞길을 막는 길에서 물러가고 비키라고 고함만 칠 것이 아니요,

백신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변화하고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자신에게 묻고 나아가 하나님께 묻는 것은 지혜이다.

지금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를 찾고 계시다. 우리가 주님께 발견된 자로 존귀한 곳에 쓰임 받기를 기원하며

주님을 따라 천국까지 이르는 축복과 승리를 축원한다. 다윗처럼 나로 인하여 후손이 복 받게 하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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