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두가 더 젊어지고 더 건강해지고 더 오래 살려는 열정이 하늘을 찌른다.

해보다 먼저 일어나 산에 오르고 건강을 위한 음식과 운동, 몸에 좋다는 무수한 비법을 상품화 시켜 구매를 일으킨다.

진정 주름살을 펴게 하고 빠진 머리가 나며 검은 머리를 계속 유지케 할 수 있을까?

더 건강하게 가꾸는 것은 가능하나 더 젊게 하거나 젊음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이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시간이 멈추지 않는다. 비록 시계가 고장 나 멈춘다 해도 시간은 끊임없이 가고 그것의 내용은 바로 우리가 늙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나 젊음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것은 순리가 아니라 역리이기에 곱게 늙으려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건강이 아니겠는가?

육체가 늙고 무너져 내림(고후5:1)을 서러워할 것이 아니다. 이것을 이길 수 있는 더 큰 기쁨의 비밀이 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인생의 지혜요, 승리다. 사도 바울은 창조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고 외친다.

엄청난 비밀인 속사람을 보게 하며 육체로 인한 두려움과 근심을 이기는 유일한 힘과 진리로 우리를 이끈다.

 

우리의 겉 사람은 날로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는 엄청난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목표를 얻게 한다. 우리의 육체를 비롯하여 모든 것이 낡아지고 고목이 되어

소멸하는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여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새 창조의 역사이다.

예수를 핍박하던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뒤 새 생명으로 거듭나고(고후5:17)

그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어 예수를 따르며 증거하는 그의 제자요, 그의 파송을 받은 사도(Apostle)가 되었다.

예수의 핍박자가 도리어 증거자가 되어 자기의 생애를 다 쏟고 자기의 생명까지 불태워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세우는 일에 즐거움으로 헌신했다. 왜? 어떻게 그 일에 자원하여 헌신할 수 있었는가?

그는 참과 거짓을 알았고, 썩어질 것과 영원한 생명을 알았기에 잠시에 머물지 않고 영원을 사는 진리에 몸을 던졌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빌3:7-8)고 고백하며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3:8-9)고 고백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은 자, 그 안에 사는 존재가 되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주는 것이 최고의 귀한 일이며, 최고로 가치가 있는 인생을 사는 것임을 확신한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고 나아가 주님의 사명임을 깨닫고 하늘의 영원한 상, 면류관을 바라보며 충성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선교사역은 순탄치 않았고 생명을 건 싸움의 연속이었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하여 장막을 만들고(행20:33),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주었다고 매 맞고, 감옥에 들어가 차꼬에 갇히며(행15), 대적하는 무리들이 그를 죽이려고 거짓과 폭력,

세상의 철학과 무기를 다 동원하여 공격하였으며 심지어 자기가 세운 교회들로부터 거짓 사도라는 배척에 시달리는 고뇌와 고통은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시험과 핍박을 다 참고 견디며 승리했다. 어떻게 불같은 시험과 지옥 같은 고통을 이겨 낼 수 있었는가?

물론 주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었으나 그가 고백하는 한 가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것을 바라보고 달렸고 승리하여 그것을 전한다.

 

사도 바울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았으나 그것을 빼앗기거나 놓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권면한다.

바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그의 사랑이신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로 그의 복음, 그의 생명, 성령의 축복을 상실하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주의 환상과 계시”(고후12:1)를 받아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았고 어느 누구도 듣지 못한 하나님의 엄청난 비밀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계시로 보고 기록한 모세처럼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는

“셋째 하늘(the third heaven)에 이끌려 올라가”(고후12) 낙원(paradise)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12:4) 엄청나고 고귀한 비밀을 주님께로 부여받은 사도임을 고백한다.

보배를 담은 질그릇처럼 뭇 사람들에게 백번 자랑하고 싶으나 자칫 교만해지면 모든 것을 다 잃을 수 있는 넘어짐이요,

패망(잠16:18)이라는 경고를 두려움으로 기억한다. 오히려 자기의 약함을 겸손으로 드러낸다면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더욱 밝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연약함을 자랑한다.

진정 바울은 훌륭한 사도요. 능력자로 세계를 주의 복음으로 변화시킨 위대한 사도로 쓰임 받았다.

 

사도 바울이 주님께로 부터 특별한 사랑과 비밀을 간직하고 능력있게 쓰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나? 불편한 진실로서 그에게

“육체적 가시”(12:7) 즉 심한 육체적 고통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해할 수 없는 대조적 현상으로 도대체 무슨 가시었나? 확실하게 모르나

‘칼빈’은 양심의 가시로 사역에 대한 회피를 말하며 ‘루터’는 적들의 핍박이라고 해석한다.

나아가 로마 카톨릭의 금욕 고통설로 인간의 본능인 성에 대한 억제에서 오는 고통을 말하고, 또한 육체적 외모(고후10:10)에 대한 빈약함을 지적하며 끝으로 육체적 질병으로 해석한다.

그의 가시는 간질병과 심한 두통 그리고 심한 안질을 열거한다. 이들 중에서 가장 유력한 견해는 안질병(행9:9, 갈4:15, 6:11)으로 여러 성경에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분명 그것은 일생동안 바울을 괴롭혔던 가시로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후12:7)고 고백한다.

 

사도 바울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를 고쳤지만 자기의 육체적 고통이 자기에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다”(12:8)

그런데 주님께서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12:9)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그 말씀을 듣고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라”(12:9)고 가시 속에 은혜를 깨닫고 그것을 도리어 기뻐했다.

왜냐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12:9)고 고백하며 사도 바울은 그렇게 살았다. 자신을 쳐 복종시킴으로 승리하고 그 비결을 가르치고 권한다.

 

우리로 하여금 성도들의 가시, 육체적 고통을 신음과 한탄 좌절과 절망으로 무너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주의 은혜를 사도 바울을 통하여 조명한다.

첫째는 지구상의 모든 만물이 태양 아래 있는 것처럼 인간의 생사화복과 “사탄의 사자”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알게 한다.

둘째, 인생의 가시가 고통으로 신음하고 아파서 우는 통곡을 기도로 바꾸게 만든다.

셋째, 인생의 가시는 주님 앞에 무릎을 세우며 겸손으로 낮아지게 한다.

인생의 오른손에 풍요와 왼손에 평안히 손을 잡으면 감사하는 기도가 아니라 방탕으로 달려가는 발을 움직이게 한다.

넷째, 인생의 가시는 주님께서 주신 은혜와 능력을 간직하는 유일한 울타리로 주님의 설계이다.

나아가 우리가 낮아지고 약함을 겸손으로 손을 들 때 주님께서 붙잡아주시며 권세와 능력의 팔로 사용하신다.

기독교의 역사는 외부적으로 왕성하고 화려할 때 내면속엔 부패가 있었고 썩었으나 외부적으로 박해를 받을 땐 내부는 오히려 생명력으로 강했음을 대변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19의 판데믹(창궐)은 영육은 물론 경제적 고통을 눈물로, 심지어 극단의 선택으로 몰고가는 뼈아픈 가시다.

보이지도 않는 대적과 긴 시간을 마스크를 쓰고 싸우며 원망과 불평으로 코로나 브르(우울), 코로나 포비아(공포)가 확진자뿐 아니라 모두를 포로로 삼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가시로 인해 주님의 은혜를 간직하는 비밀스런 은혜를 깨닫고 도리어 기쁨으로 승리한 비밀을 곱씹어 보면서 새로운 시선으로 코로나를 재해석하며 그 속에서도 은혜를 건져보자.

첫째,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보면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는 신령한 눈을 열어가는 은혜를 깨닫자(골1:15)

둘째,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우리는 죄와 악한 영들과 싸우는 자임을 깨닫자(엡6:12)

셋째,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 백신을 만들어 승리를 얻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 승리를 쟁취해야 함을 깨닫자.

넷째, 코로나를 통하여 인간의 무지와 무력함을 애통하며 기도하는 기회를 만들자.

다섯째, 코로나 바이러스는 동물들과의 부적절한 접촉과 관계로 우리에게 들어왔음을 기억하며 죄와 부정한 것을 피하는 성별의식을 새롭게 고취하자.

 

끝으로 지금까지 만남이 아름답고 귀한 가치로 자리했던 우리의 사상과 가치를 코로나가 비대면으로 바꾸어 놓았다.

인간의 사상은 완전하지 못함을 깨닫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은혜를 간직하기 위한 비밀로 인간에게 가시를 주어 겸손으로 간직하게 하신다.

그것은 육체의 고난과 고통을 사도 바울처럼 기도할 때 깨닫는 은혜지만 불평과 원망은 주의 은혜와 믿음을 빼앗기는 무서운 상실을 경계하자.

분명 코로나 속에도 주님의 은혜가 숨겨져 있다. 그것을 찾고 기쁨으로 면역성을 높이고 코로나도 이기고 삶에 진정한 승리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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