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이 향년 78세로 생애를 마무리하고 우리의 곁을 떠났다. 세계가 그의 죽음을 톱뉴스로 알리며 애도했다.

우리는 깊은 아쉬움과 아픈 마음으로 물을 드린 조화 한 송이를 영정 앞에 드리며 죽음을 넘어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그는 떠났지만 일구어 놓은 숱한 업적을 우리가 누리며 그의 죽음을 통해 나를 보는 인생의 지혜를 배운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일군 그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그 한 마디를 그의 이름처럼 기억하고 있으며 세계를 석권한 사상으로 통한다. 이렇게 생각을 해 본다.

첫째, 마누라와 자식 말고는 다 바꾸라는 것은 먼저 마누라와 가족은 바꿀 수 없는 것이요,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나아가 바꾸어서는 안 되는 그것을 바꾼다면 그다음에 무엇을 하더라도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결코, 변할 수 없는 진리를 생각케 한다.

둘째, 바꾸어야 할 것을 계속 고집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패배하는 자로 오늘에 존재하면서 어제를 사는 사람이다.

어제 속에서 오늘을 사는 자는 이미 늙어버린 자요, 경쟁에선 낙오이며 앞에서 끄는 자가 아니라 뒤에서 끌려가는 자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새로운 변화와 혁신으로 무수한 경쟁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브랜드 삼성을 키워냈다.

얼마 전까지 일본은 몰라도 소니(Sony)는 잘 알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 소니를 제치고 한국은 잘 몰라도 삼성(Samsung)은 세계에서 빛나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의 손에 쥐어진 핸드폰의 대명사가 되었다.

셋째, 이건희 회장이 죽었지만, 그의 유산은 18조2400억으로 10조는 세금으로 바쳐야 한다는 계산을 내놓고 있다.

평생 셀 수 없는 돈을 놓고 죽은 죽음 앞에 하루에 1억씩 치료비를 드려 연명할 수 있다면 600년을 더 살 수 있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의 생명은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고 하신다.

그렇다고 가난하고 못 먹어도 산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 있지만 진정 내 생명은 내 소유가 아니며 생명을 주신 창조의 주 하나님의 것으로 그의 주권에 달려있다.

그리하여 한 부자가 풍년으로 많은 양식을 새로 지은 창고에 쌓아 놓고 자기 영혼에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12:19)하되 하나님이 다 들으시고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12:20)고

물으시며 현명한 답을 기대하신다. 영혼을 도로 찾으시는 주님 앞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사려고 하거나 돈을 받고 생명 연장을 거래하는 자의 어리석음을 드러내신다.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명하신다(눅12:22).

우리가 생명을 경영하려면 의식주가 필요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이마에 땀을 흘리며 부단히 연구하고 노력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속에서 작고 적은 나라이지만 잘 사는 부류에 속한다. 진정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사실 천연자원도 부족하기에 수출주도형 정책으로 국가를 경영하기에 세계적 경쟁을 피할 수 없다.

달아나는 일본과 쫓아오는 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늘 불안하며 살 얼음 위를 걷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하여

세계시장이 위축되고 우리의 골목 시장도 문을 닫는 쪼들림 속에 근심과 걱정이 점점 더하며 무거운 짐을 진채로 어제를 그리워하며 회복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사실 염려와 근심 그리고 걱정을 한다고 변하는 것이 없지만 전혀 염려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진정 그것들의 기능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고유의 기능이 아닌가 싶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마26:38)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에 대해 염려와 근심을 하는 것을 아주 금하신 것은 아니나 “염려하다(Anxiety)”라는 헬라어 원어는

습관적으로 반복하여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을 의미하며 습관적으로 생활에 염려하는 사람은 신앙에 문제가 있는 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에 대한 의심의 또 다른 얼굴로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그의 실제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온 직후부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고 근심하며 불평했다(출16:22-24).

그들의 습관적인 염려와 근심은 다시 하나님께 대한 의심으로 자랐고 그 의심은 불신앙의 열매를 낳게 되어(출17:2-7) 결국 40여 년 동안 광야를 유랑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두 죽고 오직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 약속의 땅을 얻게 되었다.

 

영국의 문필가였던 칼라일(T. Carlyle)에 대한 일화이다. 그는 항상 생각하고 글을 쓰는 분이었으므로 조용한 곳을 좋아했다.

그런데 옆집에서 닭을 몇 마리 길렀다. 칼라일은 새벽마다 닭 우는 소리로 잠을 자지 못하다가 한번은 그 주인을 만나 사정을 말했다.

그때 주인은 “새벽에 세 번밖에 울지 않는데 왜 그러시오”라고 대답했다.

이에 칼라일은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놈의 닭 울음소리가 걱정이 돼서 밤중부터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카라일을 괴롭히는 것은 실상 닭 우는 소리가 아니라 닭이 울면 자신이 잠을 잘 자지 못하리라는 근심과 걱정이었다.

우리도 코로나19보다 그것에 대한 공포와 염려에 포로가 되고 습관화가 된 사람은 건강은 물론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은 불신앙을 낳아 세상의 죄와 불의에 타협하여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악한 영의 미혹에 빠지게 된다.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무엇인가? 다윗은 염려를 소망으로 바꾸는 지혜를 성경으로 고백하며 가르치길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39:6-7)라며 염려와 죽음이 내려치는 어두운 바다에 소망의 등대를 보게 한다.

 

예수님은 염려를 이기는 비결로 까마귀와 백합화를 생각해보라 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창이요,

하나님을 듣는 메시지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확신하는 증인으로 우리를 깨우신다. 까마귀는 먹기 위해 심지도 거두지도 식량을 모아 둘 골방이나 창고도 없다.

그럼에도 굶어 죽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에서 친히 기르신다. 유대인들에게 까마귀는 의식적으로 부정한 동물이나(레11:15)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요, 자녀로 기르시며 돌보심을 까마귀를 통하여 확신하라는 것이다.

또 백합화도 마찬가지다. 백합화는 실을 만들거나 짜는 일이 없으나 사람이 공들여 짠 어떤 옷 보다도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다.

누가 준 것인가? 하나님이시다! 백합화는 한때 아름답게 피었다가 덧없이 사라지는 식물에 불과하나 이보다 더 귀한 자기 백성의 먹고 입는 문제를 어찌 방치하시겠는가?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12:30).

신음을 들으시고 고치시며 채우시는 아버지이시다! 염려를 믿음으로 바꾸어라.

근심과 걱정을 믿음의 기도로 다 바꾸라! 까마귀 소리와 백합화의 향기를 무시하지 말라!

 

이제 우리는 문제가 닥칠수록 그것에 집착하는 염려와 근심이 아니라 문제를 넘어 상황을 넓게 보는 시각을 가지고 믿음의 생각을 키우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나는 하나님께 어떤 존재인가?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나아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도우셨는지를 생각해보자,

분명 현재 닥친 상황도 결코 절망으로 끝나게 하실 것이 아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자!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부자의 관계 속에 있음을 생각하며 믿음과 용기를 갖고 도움의 은총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로 나가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그리고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고 보장하신다.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는 것은 편안히 자고 누워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말씀하신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일어나 주어진 사명, 가정과 교회, 직장과 사업,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노력보다 더 크고 귀한 주님의 돌보심과 채우심을 보장하신다(눅12:31).

사실 우리는 우리의 키 1cm나 우리의 생명을 일각이라도 연장할 수 없는 존재임에도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으로 그의 전능하심과 선하심을 믿지 못하는 죄이다. 결국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하며 심령을 상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잠15:13).

 

예수님은 근심을 믿음으로 바꾸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며 사는 복된 제자들에게 권면과 축복을 확실하고 견고케 하기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33)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천국의 백성들이 소수라는 사실과 소수이기에 불안을 가질 수 있는 구조를 아신다.

사람들은 자신이 다수의 무리에 속해 있을 때 안도감을 느낀다. 주변의 사람들이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할 때면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안도감을 느끼고, 자신의 결정이 다른 사람들과 일치할 때에 옳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소수에 속한 자들은 견고한 소신으로 단단히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언제나 불안한 법이다.

뭇 사람들이 선호하고 추구하는 바가 자신의 것과 딴판일 때 자신이 틀리지 않았나 하는 불안감과 더불어 다수 공동체에 대해 소외감을 느끼기 쉽다.

코로나의 정국 속에 교회와 성도들은 이런 점에서 천국 백성들과 똑같다.

 

세상 사람들이 먼저 축구경기를 하는 것은 먹을 것과 마실 것 즉 육신의 필요와 안락함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29)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명하시고 계시다.

이는 다수의 세상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의 삶을 추구하라는 명령이다.

즉 다수 속에서 소수로(minority in majority) 살아가라는 가르침이시다. 이는 우리의 형편도 모르고 내려진 무책임한 일방적 명령이 결코 아니시다.

천국 백성이 이 땅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며 소수로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도 잘 알고 계시다.

그리하여 주님은 먹을 것과 마실 것 등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더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나아가 소수의 백성을 향해 하늘에 계신 천부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그들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하신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선으로 추구하는 천국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는 비록 소수로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 바로 그 소수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신다고 하신다.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요, 용기가 아니겠는가? 비록 우리가 이 땅에서 소수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관심과 미래의 약속이 주어진 복된 천국의 시민임을 기뻐하며 천국을 전하고 침노하자! 어려운 자들을 돕고 이 땅과 천국에서 부요한 자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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